보건관리자의 위상 제고를 꾀할 때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박승권]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보건관리자를 사업장 내 보건에 관한 기술적인 사항에 관해 사업주를 보좌하고, 관리감독자(조장, 반장, 직장 등 흔히 말하는 중간관리자)에게 지도·조언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업장의 업종과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5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사업장에는 보건관리자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체로 규모가 작을수록 외부 전문 기관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규모가 클수록 직접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흔히 보건관리자라 하면 사업장 내 건강관리실(의무실이라고도 흔히 표현하는)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우선 떠올리거나 건강검진 관련 직무를 수행하는 인력, 혹은 사업장이 갖는 각종 법적 의무에 관한 직무를 담당하는 자리로 인식하기도 한다.
즉, 이들 업무의 양태는 사업장마다 꽤 다양하고 드러나는 듯 드러나지 않는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또한 많아서 심지어는 보건관리자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다.
실제 보건관리자를 다소 피상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위치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개별 사업장 고유의 특성 때문에 불가피한 면도 있을 수 있겠으나, 사업장 내 보건관리자의 직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 상부의 결정과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 현장에서 보건관리자로 하여금 전통적인 의미의 직업병 예방에 국한된 역할을 넘어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또 근골격계, 뇌·심혈관계, 정신건강 문제 등 비교적 일반질환과의 경계가 불명확한 영역의 증진 노력에 대한 요구까지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건관리자가 주도적으로 사업장 내 다양한 건강증진활동에 관하여 기획 및 집행, 평가 등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나, 그에 적합한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보건관리자는 산업보건에 관한 식견을 갖추고 있고, 사업장 내 건강·보건상의 유해·위험 요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한 보건관리자가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은, 사업장의 자율적인 보건관리 체계 구축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속하는 보건관리자는 사업장 내 각종 위험과 문제를 인지하더라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사안을 뭉개거나 덮는 방향으로 결정할 동기가 생기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보건관리자가 소신껏 목소리를 낸다 하여 융통성 부족하고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거나, 부당하게 업무가 가중되는 등의 개인을 향한 페널티가 초래될 우려가 불식되지 않는 이상 이 구조는 쉽사리 개선되긴 힘들다.
개인에게 책임 전가가 더 쉬운 보건영역
안전영역과는 다소 다르게 보건상의 문제는 일부 급성 중독 사례를 제외하고는 인과성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이슈화되기 어려워 해당 문제에 따른 피해가 오롯이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되기 쉬운 특성이 있다.
자기규율 예방체계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유해·위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의 '참여'가 중요하다. 노동자의 참여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전문성을 가진 보건관리자의 참여이고 이는 형식적인 참여에 그칠 것이 아니라 본인이 발견하고 인식하는 유해·위험 요인을 큰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들춰낼 수 있는, 아니 이에 더 나아가 들춰내도록 장려되는 체계가 구축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보건관리자의 위상 제고를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업장의 업종, 규모, 조직 체계 등에 따라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겠으나 아직 보건관리자의 위상 강화에 대한 노력은 업무 수행을 위한 최소 시간을 규정한다거나 각종 인증평가에서 보건관리자의 정규직 여부와 근속년수가 반영되는 수준에 그치는 아쉬움이 있다.
우선 보건관리 전담 조직이 사업주 등 경영 책임자의 직속 조직으로 편성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부서 위의 본부나 실 등의 상부 조직을 거쳐야 하는 경우, 인식된 보건상의 문제가 특정 조직을 거치는 과정에서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뭉개져 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보건관리자가 수월하게 사업주 등 경영 책임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체계와 이에 대한 유인책이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각 부서의 핵심성과지표(KPI) 측정 및 평가에서도 보건관리자의 참여가 확대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직위의 상대적 고하에 따라 보건관리의 영향력이 달라지지 않도록 말이다.
물론 보건관리자 스스로가 그 역량을 키우고 증명하려는 노력 또한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간 활성화되어 운영되지 못했던 보건관리자 조직이 최근 지역 단위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주도 혹은 협조로 활기를 찾고 있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은 매우 반가운 부분이다.
보건관리자는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보루와도 같다. 지금까지는 보건관리자 선임 범위 확대와 같은 양적 성장과 고용 불안정 해소와 같은 처우개선에 힘을 써왔다면, 이제부터는 그간 소홀했을지 모를 보건관리자의 역할 재정립, 권한 및 책임 확대 등에 관한 관심과 논의가 활발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용균재단 이사이자,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로 활동하는 박승권 님이 쓰셨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 박영근 작품상 반납한 조성웅 "조혜영 시인의 '미투', 외면할 수 없었다"
- [단독]"'김건희 사기꾼' 표현, 한국대사관 이의 제기로 수정"
- 윤석열·김건희 비판하자 행정관료들이 벌인 일
-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 금투세는 '재명세'가 아니라 '주가조작방지세'다
- 뇌졸중 뒤 몸이 불편해진 아빠, 그건 민폐가 아니에요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김건희 공천 루트가 이철규", 또 다른 폭로
- 한미일 외교장관 "연내 3국정상회담 개최 위해 적극 노력"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독대 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