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지쳤다"…노벨상 과학자도 경고한 이스라엘 '두뇌 유출'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사는 분자유전학자 비요르트 크라게스틴(37)은 이번 주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매일 밤 옷을 입은 채 잠을 자고, 미사일 경보가 울릴 때마다 90초 안에 두 살배기 딸을 데리고 놀이터 옆 폭탄 대피소까지 달려야하는 상황에 지쳤기 때문이다. 크라게스틴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다시는 여기 살고 싶지 않다. 전쟁으로 나는 변했다”며 “친구들도 떠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가자 전쟁 발발 1년을 앞두고 이스라엘 현지에선 고도로 숙련된 인력들이 고국을 떠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1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는 “전쟁으로 지친 이스라엘이 하마스 공격 1년 만에 두뇌 유출에 직면했다”며 “낮은 실업률(2.6%), 상대적으로 적은 부채 수준이 급증하는 국가적 부담을 감추고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시니어 의사 병원 떠나고 교수진 채용 어려워”
이스라엘의 두뇌 유출은 저명 과학자가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00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아론 치에하노베르 테크니온공대 교수는 지난달 기업·학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한 행사에서 “이 나라를 떠나는 거대한 물결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시니어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고 대학들은 중요한 분야에서 교수진을 채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 사람들 중 3만 명이 떠난다면 여기엔 나라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현지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 1만2300명의 이스라엘인이 출국해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3만 명이 떠났다.
병력 부족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퇴역장성인 이츠하크 브릭은 지난 3일 현지매체 하레츠에 기고한 ‘붕괴중인 것은 하마스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하마스는 이미 17~18세들로 대열을 보충했는데 (이스라엘) 징집병들은 지치고 훈련 부족으로 전문 기술을 잃어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다면전을 벌일 병력이 부족하다”며 “이스라엘의 경제, 국제 관계, 사회적 응집력이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대한 이번 소모전으로 심각하게 손상됐다”고 우려했다.
기업 6만개 문 닫을 수도…헤즈볼라 전쟁 확대도 타격
경제도 전쟁 초보다는 나아졌지만 완전히 회복했다고 하긴 어렵다. 이스라엘 국내총생산(GDP)은 전쟁이 시작된 지난해 4분기엔 5.7% 감소했다가 올해 1분기엔 3.4% 성장했다. 하지만 2분기엔 0.3% 성장에 그쳤다.
이스라엘인의 가장 큰 부담은 전쟁으로 변한 일상이다. 텔아비브 인근 키부츠에서 살며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하는 오메르(38)는 “사람들이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식비와 주거비의 상승”이라고 전했다. 전쟁으로 일부 지역 주민들이 대피하면서 농업 생산에 차질을 빚자 식료품 가격이 올랐다. 전쟁 전 8만여 명에 이르던 팔레스타인인 건설 노동자가 사라지면서 주택 건설이 중단돼 집값 상승 우려도 나온다.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홍해를 통한 배송이 방해받으면서 해외 운송 물품의 가격도 올랐고, 전쟁 장기화로 관광 산업도 타격을 입었다. 이스라엘 셰켈도 유로화 대비 약세다. 이스라엘 조사업체에 따르면 올해 최대 6만 개 기업이 문을 닫을 전망이다.
전쟁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5월 이스라엘이 2023~2025년 국방·민간 비용으로 약 670억 달러(90조)를 지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 재정도 지난 8월까지 1년간 적자가 GDP의 8.3%로 증가했다고 이스라엘 재무부가 지난 9일 밝혔다.
히브리대 경제학 부교수인 앨론 아이젠버그는 “특히 이스라엘의 수익성이 높은 기술 분야에서 유능한 인력의 이탈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간) 전쟁이 격화되면 비용이 더 증가해 경제 불확실성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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