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신이 없었으면 좋겠다
미국 작가 아서 밀러가 1949년 발표한 ‘세일즈맨의 죽음’에는 주인공 윌리의 생애가 담겨 있다. 소설의 백미는 그의 젊은 시절이다. 그는 그저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한 의미 없는 노동에 젖어, 자기연민에 빠진 채 출장 중에 외도를 일삼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내 인생이 고달프니까’라든지 ‘외도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라며 합리화한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똑똑한 아들 비프가 자신을 우상처럼 떠받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비프가 대학시험에 낙제한 뒤 낙심한 채 출장을 떠났던 아버지를 찾아갔는데 거기서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다. 이에 윌리는 “비프야, 너도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된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그래도 아들이 빤히 쳐다보고만 있자 “명령이야. 다 잊어버려”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그리고 끝내 비프가 그를 “거짓말쟁이이자 엉터리 사기꾼”이라 부르며 달아나자 윌리의 무릎이 꺾인다.
저자는 부자의 갈등과 파국을 통해, 자본주의의 부품으로 전락해 소외당한 사람들을 비춘다. 그러면서 사회구조의 모순과 그 가운데 자신에게 문제없다고 항변하다 결국 무너져버린 한 개인의 모순을 고발한다. 무너진 아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던 윌리는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보험금밖에 없다는 잘못된 생각에 이른다. 소설은 일부러 차 사고를 낸 윌리에게 그의 아내 린다가 “당신의 보험금으로 마지막 빚을 다 갚아 드디어 자유로워졌는데 당신은 어디 있느냐”며 오열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이 대사가 윌리의 인생을 대변한다.
비극적인 점은 이 작품의 사회구조적 모순과 그 가운데서 합리화하며 사는 모순된 개인의 삶이 무려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에 경도된 현대인들의 자화상. 그러다 보니 인권보다 점점 강해지는 건 여전히 ‘돈권’이다. 또한 현대인들은 또 다른 위협인 ‘과학주의’에 노출돼 있다. 과학은 위대하나 과학주의가 세상을 주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저 우주먼지의 우연한 조합으로 귀결되기에 나와 타인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없다. 존재하는 목적 따위도 없기에 그냥 살아있으니 사는 것뿐이다. 이와 같은 밑그림 위에 사람들은 어떻게 채색할까. 그 방향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게 인간 본유의 가치는 축소돼 간다.
윤리 역시 실종되고 있다. 물론 시대를 막론하고 상식적 윤리를 무시하고 자기 욕망대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모든 윤리는 배격되고 오직 절대반지 하나만 남았다. 누구도 남의 인생에 상관해서는 안 된다는 유일 잣대. 그래서 나쁜 짓을 안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 나쁜 짓 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서로 상관하지 않으며 존중해가는 것 같지만 실제 사람들의 내면은 점점 더 예민하고 분노가 점점 더 커진다.
그런데 다수의 인문학자가 동의하듯 ‘인간 가치’나 ‘윤리’는 종교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윤리는 신이라는 절대자의 존재를 벗어나서는 기준이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인간의 가치는 유일하게 성경만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는 종교가, 특별히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신앙이 공공사회에 상관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주력한다.
왜 그럴까. 역사 속 존재했던 종교의 사회적 폐해 때문일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무신론자인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이 ‘마지막 말’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신론이 옳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가장 박식한 지성인 중 일부가 종교 신자라는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으며 당연히 내 신념이 옳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신이 없었으면 좋겠다. 신이 있는 게 싫다.”
그렇다. 내 맘대로 살고 싶은데 그것에 가장 큰 장애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신이기 때문에 그렇다. 신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게 핵심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여기 존재하듯 대항하는 사탄의 나라 역시 현존하는 게 분명하다.
손성찬 목사(이음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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