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내년 추석은 괜찮으려나
중증환자 중심 응급실 운영은 의료사태 와중의 ‘럭키비키’
윤-한 회동 통해 민생 현안인 기후위기 의료개혁 해법 찾길
몸은 덥고 마음은 불안한 추석이었다. 35도 안팎의 폭염에 시달리고, 어디가 아파 응급실에 가는 일이 생길까봐 마음 졸였다.
①그해 여름은 시원했네
이번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말도 있듯 앞으로 지구 온난화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한다. 이상기온 때문에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아프고 죽는다. 올 여름 온열질환자 수는 3500여명, 사망자는 30여명이다. 집사람도 이번 추석에 지방에 내려가 음식 장만을 하느라 온열질환자가 될 뻔했다. 기온이 35.7도를 기록한 날, 음식을 준비하는데 오후 2시쯤 에어컨이 고장났다. 더워서 에어컨을 계속 트는 바람에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다. 집사람은 밥과 김치 등 기본 반찬은 물론이고 갈비찜, 잡채, 탕수육, 새우튀김, 고사리와 도라지 나물, 육전, 송편, 미역국, 생선찜을 했다. 모처럼 모인 가족 10명 정도가 추석 연휴 내내 먹을 양이었다. 15년 동안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조리사로 일한 베테랑인데도 “중학생 1800명 급식까지 해봤지만 오늘이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은 당분간 집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될 것 같다. 80세 가량의 집안 어르신들을 모시고 집 주변 나들이 가는 것도 너무 더워서 포기했다.
②아프지 말자
장시간 차를 몰고 지방을 오가는 내내 보통 때보다 더욱 운전에 신경 썼다. 절대 응급실에 갈 일이 생기면 안되니까. 추석 전 의사들 온라인 커뮤니티에 응급실 대란이 일어나 환자들이 죽어나가길 바란다는 글이 올라오고, 응급실 근무 의사 블랙리스트를 공개하는 겁박과 조롱이 있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추석 연휴 기간 중 광주와 전주도 들렀는데, 하필 광주에서 손가락이 잘린 환자가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전주에 가서야 수술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와 더욱 불안했다. 양수가 터진 임신부가 병원 수소문만 하다 6시간 만에 겨우 치료를 받았다는 소식도 들렸다. 어느 집 가족들은 각자 음식을 준비해서 왔지만 식중독이라도 걸릴까 봐 잘 먹지를 않아 음식이 잔뜩 남았고 결국 쉬어서 버렸다고 한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면 병원에 가야 하니 추석에 생선전은 먹지 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③럭키비키 추석
나쁜 일에도 좋은 구석이 있는 법이다. 응급실이 경증환자가 아닌 중증환자 중심으로 운영됐다. 연휴를 반납한 의료진들은 헌신적으로 일했고 경증환자들은 동네 병·의원을 이용했다. 이 덕분에 우려했던 응급실 대란은 없었다. 중증환자 중심의 응급실 운영은 이제 ‘뉴노멀’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요리하다 손가락을 베어도, 감기로 인해 열이 나도 응급실을 찾곤 했다. 그렇게 시민의식을 강조해도 고쳐지지 않던 고질적인 응급실 쏠림 현상이 전공의 파업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줄서서 기다리던 빵집 빵이 바로 자기 앞에서 다 팔렸지만 갓 구운 빵을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다며 좋아했다는 아이돌 멤버의 긍정적인 생각을 뜻하는 유행어 ‘럭키비키’처럼, 전공의 파업 속에 맞은 이번 추석은 중증환자 중심의 응급실을 가능케 한 럭키비키다.
긴 폭염이 끝나고 갑자기 가을이 왔다. 불안감 속에 응급실 대란도 가까스로 넘겼다. 국민 모두 고생한 추석이었다. 하지만 기후 위기와 의료 위기는 진행 중이다. 내년 추석도 ‘하석’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소수 인원으로 의료 현장을 지켜온 의사들도 지쳐 있다. 오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만찬 회동을 한다. 더위에 고생한 국민들을 위로하고 에어컨 없이 사는 취약계층을 폭염에서 보호할 대책 같은 것을 궁리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 문제는 이제 환경론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일상이고 민생이 됐다. 무엇보다 전공의 파업 사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바란다. 아무리 개혁의 방향이 옳아도 능력이 없으면 실패한다. 의대 정원 확대라는 방향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이 찬성하지만 8개월째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실망하고 있다. 의료계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해 관철시키든, 대화와 설득으로 풀어가든 결국은 의료 개혁에 성공하는 국정운영 능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의료계는 문재인정부 때 의대 증원 방침을 파업으로 굴복시킨 적이 있다. 이미 결정된 내년 의대 증원마저 의료계 반대로 또 무산될 경우 앞으로 의료 개혁은 남북 통일보다 어려워질 것이다. 내년 추석은 올해보다 나았으면 좋겠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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