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의 시시각각]임종석의 커밍아웃
임종석(58)씨는 문재인 청와대 초대 비서실장, 재선 국회의원, 전대협 의장, 박원순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가장 애착을 보였던 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경문협 설립을 주도했고, 2005년부터 12년간 이사장을 지냈으며, 2019년 “통일 운동에 매진하겠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이듬해 또 맡은 게 경문협 이사장이었다. 사실상 ‘임종석의 경문협’이었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경문협의 핵심 사업은 북한 저작권료 추심이었다. 북한 조선중앙TV의 자료화면 등을 쓴 국내 방송사ㆍ출판사로부터 저작권료를 받아내 북한에 송금하는 일이었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한 그 시절, 행여 북한이 자기 권리를 놓칠까 봐 당시 ‘국회의원 임종석’이 살뜰히 챙겨준 것이다. 물론 북한이 남한에 저작권료를 낼 리 없지만, 그런 얄팍한 ‘기브 앤드 테이크’로 어떻게 남북 화해를 도모할 수 있겠나. 하여튼 경문협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에 송금한 돈은 7억9000만원이었다. 하지만 2008년 박왕자씨 피격 사건으로 경문협의 대북 송금은 중단됐고, 이후 경문협이 거둬들인 저작권료는 법원에 공탁됐는데, 지난해까지 그 액수는 28억5300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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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북 주사파'라는 부담 안고서
두 국가론 주장해 공론화 성공
결국 지향점은 '북한 우선'인가
」
수면 아래 있던 경문협 공탁금이 부상한 건 4년 전이었다. 2020년 7월 서울중앙지법은 6ㆍ25 때 북에 억류돼 강제 노역에 시달린 2명의 탈북 국군 포로가 김정은 정권을 향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북한은 42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또한 배상금 4200만원에 대해선 “경문협이 제3 채무자로서 대신 지급하라”고 추심 명령을 내렸다. 북측이 받을 저작권료니 북측을 대신해 경문협이 국군 포로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였다. 북한이 배상금을 낼 턱이 없으니 국군 포로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한 현실적인 결정이었다.
문제는 이후 발생했다. 정작 돈줄을 쥔 경문협이 이를 거부해서다. 법정 소송을 제기하며 맞섰다. 논거는 두 가지였다. 저작권의 소유 주체인 조선중앙방송위가 독립 기구이기에 저작권료도 북한 정부 돈이 아니라는 것, 이에 따라 저작권료는 북한 프로그램 제작자 개인 소유라는 것이었다. 이는 김정은 1인 체제인 북한에서 방송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노동당의 선전물이 사유재산이라는 얘기 아닌가. 북한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억지 논리임에도 ‘임종석의 경문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올초 항소심은 경문협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근 임 전 실장의 “통일, 하지 말자. 2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는 발언으로 정가가 뜨겁다. 35년 전 임수경을 평양 축전에 보내고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지내는 등 줄곧 통일운동을 주창하던 그가 어떻게 180도 돌변해 ‘통일 포기’를 말하느냐가 비판의 요지인 듯 싶다. 하지만 그의 지향점이 통일이 아니라 ‘북한 우선’이라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경문협 공탁금에서 보듯 수십 년간 강제노역을 당한 국군 포로의 인권보다 김정은 정권의 재산을 더 중시하지 않았나.
주지하다시피 ‘2 국가론’을 꺼낸 건 지난해 말 김정은이었다. 이후 북한에선 평양 입구에 있던 통일탑이 철거되고, ‘통일역’ 이름이 삭제되는 등 통일 지우기가 본격화됐다. 국내에서도 이적 단체인 범민련 남측본부가 해산하고 몇몇 학자가 동조했지만 ‘2 국가론’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 와중에 임 전 실장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이번 발언이 북의 지령인지, 그의 소신인지, 친북 단체의 압력인지, 대북 비즈니스를 위한 포석인지는 임 전 실장만 알 것이다. 분명한 건 이후 갑론을박을 거치며 ‘2 국가론’은 국내 공론장에 안착했다는 점이다. ‘종북 주사파’란 꼬리표가 있던 임 전 실장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도발을 한 덕이다. 이 정도면, 민주당의 표현을 빌리자면 임 전 실장이야말로 북한의 ‘밀정’ 아닐까.
최민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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