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토종 사모펀드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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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개념이었던 사모펀드라는 이름이 세간에 알려진 계기는 2003년 불거진 '론스타 사태'였다.
미국계 사모펀드였던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입해 수년 만에 4조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남기고 '먹튀'했다.
론스타 같은 해외 투기 자본에 당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대항마 격으로 토종 사모펀드 육성에 나섰다.
이런 정책 지원에 힘입어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급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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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개념이었던 사모펀드라는 이름이 세간에 알려진 계기는 2003년 불거진 ‘론스타 사태’였다. 미국계 사모펀드였던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입해 수년 만에 4조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남기고 ‘먹튀’했다. 론스타는 이후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하는 등 악명을 떨쳤다.
론스타 같은 해외 투기 자본에 당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대항마 격으로 토종 사모펀드 육성에 나섰다. 2004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국내 사모펀드가 본격 등장했고, 2015년엔 사모펀드의 최소 투자금액, 운용, 판매 등의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이런 정책 지원에 힘입어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급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사모펀드 수는 1000개를 넘었고, 투자규모는 130조원이나 된다.
정부의 바람대로 지난 20여년간 토종 사모펀드는 대기업의 긴급 유동성 공급처를 자처하거나, 오너 일가 대신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등 우리 경제에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토종 사모펀드가 오히려 기업을 위협하는 ‘호랑이 새끼’가 돼 산업경쟁력을 훼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을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거나 단기 수익 창출을 위해 인수한 기업을 ‘껍데기’로 만드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MBK파트너스도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를 뛰어넘어 아시아 1위라고 자부하는 MBK는 최근 국내 자본 시장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메기 역할보다는 물만 흐리는 미꾸라지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가 있는 기업을 산 뒤 가치를 끌어올려 이를 다른 기업에 팔아 산업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사모펀드의 순기능이라면 MBK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 행위는 전제부터 잘못됐다.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것 외엔 큰 문제가 없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고려아연 매출은 5조4335억원, 영업이익은 45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7%, 50% 증가했다. 부채비율도 30% 수준으로 평균 이하다. 신용등급 역시 A++로 최상위급이다. 문제라면 경영진의 지분율이 낮아 영풍 측과 경영권 분쟁 중이라는 것인데 MBK는 이런 약점을 파고든 셈이다.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개입은 비공개로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아 단기간에 수익을 내야 하는 사모펀드의 본분에 충실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차전지 등 국가 기간산업의 핵심 기업을 흔드는 행위가 한국 경제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MBK가 홈플러스 등 최근 인수한 기업의 재매각이 지연되면서 조급해졌다는 평가가 있다”면서 “김병주 회장 아래 3인 부회장 체제의 굳건했던 의사결정 체계가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다.
정부의 특혜 아래 어느새 토종 사모펀드는 ‘견제 없는 권력’으로 한국 자본시장에 뿌리내렸다. 오너 사돈의 팔촌이 땅 1평을 사도 공시를 해야 하는 대기업 규제와 달리 국내 사모펀드는 공시 의무 등을 포함해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증권법, 증권거래법, 투자회사법, 투자자문업자법 등을 정비하면서 사모펀드에 대한 등록과 공시의무 등을 정했다. 이도 모자라 지난해 8월 미 증권 당국은 일부 투자자에게만 특혜성 거래 조건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사모펀드 규제안을 의결했다. 우리 정부도 고려아연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가 한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고 규제 신설 여부를 검토할 때다.
이성규 산업1부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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