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깨어 있는 삶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2024. 9. 2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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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가을바람이 분다. 참 맑다. 밤나무 밑을 거니는데 알밤들이 툭툭 떨어진다. 지난봄 밤꽃이 하얗게 산허리를 감싸며 피었더니 부지불식간에 열매를 맺었다. 언젠가 이 산에 밤나무를 심은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결실이 생긴 것이리라. 한 알 한 알 줍다 보니 욕심만큼이나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살펴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서로 얽혀있는 인연의 모습일 뿐이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함께 사라진다. 기쁨이 생기면 슬픔이 생기고, 즐거움이 생기면 괴로움이 생긴다.

「 세상 모든 것 서로 얽혀 있어
본심 챙기는 것이 선(禪)명상
자비와 친절 깃든 수행 절실

사람들은 눈으로 사물을 보고 분별한다. 분별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두 가지를 비교하여 욕심을 일으키는 분별이고, 두 번째는 나와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일으키는 분별이고, 세 번째는 경험과 지식과 정보로 아는 만큼 보는 분별이다. 이러한 분별들의 크기는 서로 비례하고 반드시 어려움이나 고통을 불러온다. 좋아하는 마음을 +5만큼 일으키면, 싫어하는 마음도 -5만큼 생겨난다. 기뻐하는 마음을 +3만큼 일으키면, 슬픔이 -3만큼 생겨난다. 가장 작은 단위의 +1만큼이라도 생겨나면 -1이 반드시 생겨난다.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전의 숫자 ‘0’의 마음이라야 욕심과 감정과 고집스러운 알음알이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다. ‘0’인 그 마음이 나의 본심이며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행복하고, 자유로운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을 지키며 사는 것이 늘 깨어있는 삶이며 중도(中道)의 삶이다. 이 ‘0’인 마음을 챙기는 것이 선(禪)명상이다. 그 마음을 챙기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보이는 모든 것의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않겠다./들리는 모든 것의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않겠다./향기와 냄새의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않겠다./모든 맛의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않겠다./몸의 느낌으로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않겠다./모든 생각의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않겠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1700년 역사의 한국불교가 현대인들에게 해야 할 역할을 선명상에서 찾았다. 2년 동안 국내에서 명상지도를 해온 스님들과 매주 선명상 공부모임을 하였다. 8주 동안 250명이 참여한 선명상 아카데미를 진행했고, 두 차례 템플스테이 지도법사단 교육과 4일 동안 50명의 선명상 지도법사를 선발하는 집중교육도 시행하였다.

오는 28일부터는 서양에서 명상을 주도하는 다섯 분의 명상 마스터들을 초청하여 광화문에서 선명상 선포식을 하고, 선명상 컨퍼런스를 진행한다. ‘죽음과 함께 하는 삶’ 프로젝트 창시자 조안 할리팩스, 마인드 앤드 라이프 좌장이자 CCT(자비계발수행법)를 개발한 툽텐 진파 박사, 구글 ‘SIY(내면검색)’ 개발자 차드 멩 탄, 플럼 빌리지 수행지도자 팝루스님, 티베트 마음수련법 로종수행으로 동서양에 가르침을 전하는 직메 린포체를 초청하였다.

현대명상은 1940년대부터 동양의 불교스승들이 미국과 유럽 등으로 진출하거나 서양의 청년들이 아시아 불교국가에서 출가해 수행을 경험하면서 시작되었다. 1세대는 한국의 숭산스님, 일본의 스즈끼 순류, 대만의 성엄스님, 베트남의 틱낫한, 티벳의 달라이 라마, 태국의 붓다다사와 아잔차, 미얀마의 파욱 사야도, 인도의 고엔까 등이다. 2세대는 동양의 스승들에게 배우고 서양의 토양에 맞게 정착을 이뤄낸 숭산스님의 제자 잭 콘필드, 의학자이자 선승인 조안 할리팩스, 영국에서 수행센터를 운영하는 아잔 수메도와 캠브리지 메디테이션센터의 로젠버그, 미국의 명상센터 IMS의 골먼 등이 대표적이다. 3세대는 명상의 과학화된 프로그램으로 1979년 매사추세츠 대학교의 의료센터에서 개발한 존 카밧진의 MBSR을 비롯하여, 캠브리지병원의 자비프로그램인 MSC,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개발한 툽텐 진파 박사의 CCT 등이다. MBSR프로그램은 전 세계 720개의 의료기관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학교와 직장, 교도소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4세대는 구글의 명상홀, 삼성의 명상센터, 마이크로소프트의 명상홀 등 기업에서 소속 직장인들을 위한 명상공간을 운영하는 흐름과, 누구나 쉽게 핸드폰만 있으면 할 수 있는 Calm, Headspace, 하루명상, 마보 등의 명상앱이다. 이런 앱이 전 세계에 3000개 넘게 개발되어 있을 정도다. 동양에서 건너간 선수행이 다양한 명상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들어와 우리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다만 ‘선’의 오랜 전통과 그 깊은 수행을 아는 이들은 명상과 선의 결합을 마뜩잖게 여기는 반면 명상을 아는 사람들은 깨달음의 목마름을 해소하는 전기로 여기는 분위기다.

아무튼 500년 동안 축적된 과학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대립과 갈등은 더 커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 시대에 자비와 친절이 깃든 쉽고 구체화한 수행이 절실한 이유이다.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조계종이 주창하고 있는 선명상이다. 현대인들이 평화로운 본심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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