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과잉? 왜 여전히 비싸지?… 이상한 ‘한우 경제학’
개체 수 조절 논의했지만 합의 못해
가격 떨어져도 소비자 체감 어려워
농협 차원 감축 대책도 실효성 의문
경기도에 거주하는 50대 주부 A씨는 “최근 가족과 등심을 구워 먹을 생각에 마트에 들렀으나 대용량이거나 불고기용 부위에만 할인이 크게 들어가 결국 고기를 내려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할인 행사를 한다고 해도 부담이 큰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한우 농가는 공급 과잉과 사료값 인상 등으로 “키우기만 해도 적자”라고 아우성치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비싼 소고기 가격에 소비에 주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일시적으로 한우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사육 두수를 크게 늘린 후 적기에 개체수를 조절하지 못한 것도 현재 ‘한우 파동’의 주요 배경이 되고 있다.
23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제공하는 축산유통 정보에 따르면 한우 등심 1등급 가격은 100g당 8637원으로 지난해(9130원) 및 평년(9837원) 수준보다 낮다. 안심 1등급 100g 평균 가격도 1만1688원으로 지난해(1만2686원)와 평년(1만2842원) 대비 낮다.
반면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한우 가격은 이보다 높다.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한우 가격은 이날 기준 한우 등심(구이용, 냉장) 1등급이 100g당 1만880원(정상가 기준), 홈플러스는 9170원에 판매됐다. 한우 판매 식당의 경우 대형마트에 비해 가격 탄력성이 떨어져 가격 하락을 체감하기 더 어렵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무래도 전반적인 장바구니 물가가 높은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등심 등 인기 부위는 체감할 만큼 가격 하락이 어려운 것도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체감할 정도는 아니어도 한우 가격이 떨어진 건 한우 사육 두수가 크게 증가한 영향이 크다. 통계청의 ‘가축동향조사’에 따르면 2020년 1분기만 해도 319만7414마리였던 한·육우 마릿수는 1년 사이 337만3344마리로 늘었다. 2021년 2분기부터는 350만 마리를 넘어선 데 이어 2022년 2분기에는 373만 마리를 넘는 등 370만 마리를 넘는 분기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도매가가 떨어진 것이 소비자가격에 반영됐다.
당시 한우 사육 두수 증가는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 계기가 됐다.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후 한우 수요가 늘었고, 한우 도매가격도 치솟았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거세우 ㎏당 가격은 2020년 2만1241원, 2021년엔 2만2667원으로 지속적으로 올랐다. 이는 평년 대비 각각 15.1%, 19.7% 높은 수준이었다. ‘돈이 된다’고 생각한 농가는 소 사육을 늘렸다. 하지만 이후 금리 인상과 내수 부진 등이 겹치며 한우 수요가 쪼그라들었다.
당시 농가와 정부 간 개체수 조절 등에 관한 논의가 있었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우 가격이 높을 때 미리 개체수를 조절해 가격 안정을 대비해야 했지만 농가 입장에선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개체수를 늘려 빠르게 도축시키면 이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부 입장에서도 한우산업이 호황인 상황에서 개체수 조절을 위한 인센티브 지급 등 정책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한우 농가에서 상경 시위를 하는 등 사태가 악화하자 정부는 한우 13만9000마리 감축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암소 1만 마리를 농협 차원에서 줄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사육 규모를 조절하지 않으면 향후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한우산업이 장기간 좋지 않으면 사육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그렇게 되면 소 한 마리가 도축되는 데까지 걸리는 약 3년의 기간이 지나면 그땐 또 소고기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이 발생해 소비자 부담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우 농가 관계자는 “정부와 농가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며 “이번 정부 대책도 예산 마련 등 구체적인 계획 없이 선언적 수준의 대책에만 그친다면 ‘소가 소를 먹는’ 일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우 농가 중엔 벼농사를 같이하는 경우도 많아 농가에서 가격 하락 충격을 이중으로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올해의 경우 쌀도 풍년이 예상돼 쌀 가격마저 하락하면 농촌의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종=김윤 기자 ky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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