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유니폼 꿈꾼 삼린이, 이젠 사자군단의 황태자
올 시즌 프로야구는 외국인 투수 천하다. 평균자책점 순위 1~5위를 모두 외국인 선수가 휩쓸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도 국내 투수의 자존심을 지킨 선수가 있다. 삼성 라이온즈 우완 투수 원태인(24)이다. 올 시즌 28경기에 나와 159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면서 15승 6패 평균자책점 3.66, 탈삼진 119개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6위, 다승 부문은 당당히 1위다.
원태인은 지난 22일 대구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사실상 올 시즌 마지막 등판에 나섰다. 6이닝 동안 5피안타 1실점의 호투로 삼성의 정규시즌 2위 확정을 견인했다. 이날 승리로 삼성은 3년 만에 플레이오프(PO)에 진출했다.
키움전 승리는 원태인 개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다. 사실상 다승왕을 확정 짓는 귀중한 승리였다. 14승을 기록 중인 다승 2위 곽빈(두산 베어스)은 앞으로 한 번 정도 더 마운드에 오를 예정이다. 원태인으로선 최소한 공동 다승왕을 확보한 셈이다. 원태인은 23일 삼성의 광주 원정경기에도 합류하지 않고, 대구에서 휴식을 취했다.
키 1m82㎝, 몸무게 93㎏의 원태인은 시속 140㎞대 중후반의 빠른 공을 던진다. 직구와 똑같은 폼으로 체인지업을 던져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다. 날카롭게 꺾이는 슬라이더도 일품이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공을 안정적으로 던지는 제구력을 갖췄다. 올해는 완급 조절 능력까지 갖추면서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원태인은 “10승째를 거둔 뒤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포수 강)민호 형과 ‘해피 베이스볼’을 하자고 했다”며 “부담감을 내려놓고, 야구를 즐기려고 하다 보니 5이닝 동안 5점을 내주고 이긴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그래도 15승이 눈앞에 오니 욕심이 생겼다. 정민태 코치님이 ‘15승을 해보는 것과 하지 않는 건 다르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힘을 냈다”고 덧붙였다.
프로야구에서 국내 투수가 다승왕을 차지한 건 무려 7년 만이다. 2017년 KIA 타이거즈 양현종(36)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양현종은 20승(6패)을 거둬 팀 동료 헥터 노에시(20승5패)와 함께 공동 1위에 올랐다. 삼성 국내 투수로는 2013년 배영수(현 SSG 랜더스 코치) 이후 11년 만이다.
원태인은 “(국내 다승왕이 나온 지)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무척 뜻 깊은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선발투수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다”며 “동료 야수들이 다승왕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야수들의 도움에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원태인은 실업 야구 제일은행에서 선수로 활약했던 원민구 전 협성경복중 감독의 차남이다. 원 감독은 1984년 삼성 지명을 받았지만, 실업 야구에 남았다. 은퇴 후엔 지도자로 활동했다. 원태인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15살 터울 형(원태진·2006년 SK 와이번스 입단)과 함께 야구를 했다. 만 5세 때인 2005년엔 삼성 라이온즈 홈 경기에 시구자로 초청돼 마운드에 서기도 했다.(작은사진) 그리고 2019년 경북고를 졸업한 뒤 1차 지명을 받고 꿈에 그리던 푸른색 유니폼을 입었다.
삼성 팬들은 꿈을 이룬 원태인을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부른다. 원태인은 “‘부럽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다승왕을 확정한 뒤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셨다. 나도 덩달아 뿌듯하다”고 했다.
원태인은 ‘빅게임 피처’이기도 하다. 2020 도쿄올림픽,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항저우 아시안게임,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등 굵직굵직한 국제 경기 때마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통산 국가대표 성적은 10경기(5선발)에 출전해 2승 무패, 평균자책점 3.28.
2021년 열린 KT 위즈와의 정규 시즌 1위 결정전에선 6이닝 동안 1실점(비자책)하면서 호투를 펼쳤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등판 경험은 적은 편이다. 2021년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구원 등판(1과 3분의 1이닝 2실점)한 게 전부다. 당시 삼성은 2연패로 탈락했다. 원태인으로선 한국시리즈와 포스트시즌 승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기회다.
원태인은 “2021년의 아픔을 반복하긴 싫다. 국제대회에서 단기전을 경험했지만, 가을야구는 다를 것”이라며 “현재 긴장감보다는 설렘이 크다.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던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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