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 꼬리표 뗀 ‘지주사의 시간’ 올까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4. 9. 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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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 상장’ 이슈 여전하지만…

한국거래소가 9월 말 기업가치 성장이 예상되는 상장사로 구성된 ‘KRX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한다. 정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소식이 전해지자 증시에선 저평가된 지주사에 매수세가 몰리는 분위기다. 국내 지주사 시가총액은 보유 계열사 가치 절반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회사 ‘중복 상장’ 등의 이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괴리율은 과도한 수준이라는 게 증권가 평가다. 특히 지주사들이 밸류업 지수 편입을 위해 적극적인 주주환원 전략을 내놓고 있는 만큼,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게 애널리스트들 설명이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코스피와 코스닥의 종합지수와 종목의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매경DB)
지주사는 왜 저평가받나

근본적 문제 ‘중복 상장’ 이슈

코스닥과 코스피 상장 국내 지주사(중간 지주사 포함) 개수는 총 130개다. 네이버증권에 따르면 9월 19일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를 넘는 곳은 13곳뿐이다. PBR은 말 그대로 순자산(자본) 대비 주가 수준을 의미한다. 지주사가 제값을 못 받는 근본적 원인은 ‘중복 상장’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지주사 투자 요인이 적다. 예를 들어 지주사 A와 자회사 B가 함께 상장했다고 가정하자. B가 진행 중인 사업이 유망하고 이익률도 높아 주식 매수를 원한다면 투자자는 B주식을 사면 된다. 굳이 A주식까지 살 이유가 없다.

해외 증시로 눈을 돌려보자. 지주사와 자회사 중복 상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올해 초 신한투자증권이 내놓은 ‘저PBR주 성과 요인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코스피 복수 상장 비율은 8.5%다. 미국(0.5%), 일본(6.1%), 프랑스(2.2%) 등 선진국 대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쿠팡 사례를 보자. 배달 앱 쿠팡이츠에 투자하고 싶거나 OTT 플랫폼 쿠팡플레이에 투자하고 싶은 투자자는 지주사 쿠팡Inc 주식을 매입할 수밖에 없다. 홀로 상장돼 있기 때문이다.

중복 상장은 더블 카운팅(이익 중첩 효과) 이슈로도 이어진다. 예를 들어 개별 기업가치가 100억원인 A, B, C 3개 회사가 동일 기업집단에 있다고 가정하면, 단순 기업가치 합산은 300억원이다. 하지만 지주사 체제로 전환(지분율 100% 단순 가정)할 경우 합산액이 달라진다. 사업회사 C는 본래 기업가치 100억원으로 평가받는다. 중간 지주사 B의 가치는 고유 가치 100억원에 C의 가치를 더해 200억원으로 커진다. A는 고유 가치 100억원에 200억원짜리 B의 가치를 더해 300억원짜리로 둔갑한다. 기존 합산 가치 300억원에서 지주사 전환 후 합산 가치 600억원짜리 기업집단으로 변모한다. 각 사의 본질 가치는 그대로인데 기업가치가 중복 계산돼 합산 가치가 커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서는 지주사에 할인율을 적용해왔다.

중복 상장 이슈 여전한데

LG·CJ·금융지주 주목, 왜?

이 같은 더블 카운팅 이슈는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저PBR주 성과 요인 분석’ 리포트에서 “2021년보다 현재(2024년) 복수 상장 비율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며 “국내 상장사의 복수 상장으로 인한 이익 더블 카운팅 규모는 2020년 8조7000억원에서 2022년 19조7000억원으로 11조원 증가했다”고 말했다. 과거와 비교해 달라진 게 없는 상황. 그런데도 증권가에서 ‘지주사를 주목하라’는 리포트가 쏟아지는 배경은 뭘까.

단순히 PBR이 낮다고 투자하는 건 여느 테마주와 다를 바 없다. PBR은 말 그대로 순자산(자본) 대비 주가 수준을 의미한다. 개념만 놓고 보면 낮은 PBR을 만드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① 주가가 낮든가 ② 자본이 많은 경우다. 문제는 ②다. 주주환원 없이 자본을 축적만 하면 PBR은 낮게 계산된다. 향후에도 똑같은 정책을 유지할 방침이라면 해당 지주사는 저PBR주에 속하더라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꺼릴 수밖에 없는 종목이다.

하지만 KRX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발맞춰 적극적 주주환원을 외치는 지주사가 여럿이다. 개선 의지가 강력한 셈이다.

증권가에서 가장 주목하는 곳은 LG그룹 지주사 LG다. 지난 8월 29일 공시를 통해 오는 4분기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드러난 계획 중 하나는 자회사 지분 매입이다. 총 5000억원 규모의 LG전자와 LG화학 주식을 장내 매수할 방침이다. 각각 2000억원, 3000억원 규모를 사들일 예정인데, 이 경우 LG의 LG전자 지분율은 30.47%에서 31.59%로, LG화학 지분율은 30.06%에서 31.29%로 높아진다. 김한이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자회사 지분 추가 매입은 LG 지주사 별도 실적에 반영되는 배당수익과 연결 실적 내 지분법손익 증대 요인”이라며 “중장기 자기자본이익률(ROE) 상승효과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앞서 취득한 5000억원 규모 자사주 소각 가능성도 내다본다. LG는 당초 예정(2022년 5월~2024년 말)보다 빠르게 올해 상반기에 5000억원 규모 자기주식 취득을 마쳤다. 기존 자사주 포함 총 보유 자사주는 발행 주식 수 대비 3.9% 수준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올해 4분기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에서 자사주 소각 등에 대한 내용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증권가는 CJ그룹 지주사인 CJ도 최근 자회사 올리브영의 급격한 매출 증가세를 바탕으로 조만간 밸류업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 황성지 흥국증권 애널리스트는 “CJ는 성장의 핵심축을 담당하고 있는 올리브영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고 있고 기업가치 제고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웅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도 “CJ올리브영 지분 확대로 배당금 수익 증가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배당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긍정적 요소다. CJ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별도 기준 당기순이익(일회성 비경상이익 제외)의 70% 이상을 배당하는 배당 정책을 시행 중이다. 2023년 배당 성향은 90.8%로 나타났다. 최근 5개년 평균 배당 성향은 95.4%다.

전통적인 배당주인 금융지주사 역시 눈여겨볼 만한 선택지다. 키움증권과 하나증권 등 주요 증권사는 금융지주를 지수 예상 편입 종목으로 꼽았다. 평균적으로 PBR이 ROE 대비 낮고 배당 등 주주환원율이 높다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하나금융지주를 최선호주로 꼽는 애널리스트가 여럿이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 발표를 앞둔 가운데 은행 업종 내에선 3분기 호실적, 추가 자사주 매입·소각 발표,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가 기대되는 하나금융지주를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은 애널리스트는 하나금융지주를 하반기 은행 업종 최선호주로 꼽았다. 앞서 50% 수준의 중장기 총주주환원율 목표치를 제시한 하나금융지주는 4분기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할 예정이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7호 (2024.09.25~2024.10.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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