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이라는 소용돌이, 전 경험해 본 적 없습니다만...
[김형욱 기자]
2016년 어느 항구 도시의 한양중공업, 강준희 대리는 인사팀으로 발령난다. 그는 행복해 보인다. 아이도 생겼고 회사 대출을 받아 집도 마련했으며 곧 결혼할 예정이다. 능력도 인정받았으니 인사팀으로 발령이 난 것일 테고 말이다. 그런데 인사팀으로 오자마자 그가 해야 할 일은 구조조정이다.
회사가 채권단의 압박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 강 대리는 팀장 정규훈 부장의 지시에 따라 사수 이동우 차장과 함께 150명의 정리해고자 기준을 정하려 주말에도 출근해 밤낮없이 일한다. 마침내 최상의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고, 근로자 측 대표자들을 뽑는 한편 희망퇴직을 받아 그들에게 먼저 제안하기로 한다. 하지만 회사 측은 이미 정리해고자 리스트를 마련해 뒀고 뒤늦게 인사팀에 전달한다. 황당하고 당황스럽지만 따라야 한다.
그런 가운데 강 대리는 직전 부서의 상사와 선배 중 한 명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뿐만이 아니라 인사팀 전원이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안면몰수하고 해야 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여러모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 영화 <해야 할 일>의 한 장면. |
ⓒ 명필름 |
강 대리에게 부과되는 괴로움의 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구조조정을 시행해야 하는 입장도 난감한데, 애써 만든 합리적인 방안은 폐기 처분되고 사 측이 제시하는 불합리적이고 불법적이기까지 한 방안을 따라야 한다. 이도 모자라 회사에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이를 잘라내야 한다니 이쯤 되면 더 이상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을 정도다.
반면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다양하다. 청춘을 오롯이 바쳐 일했다며 자신이 뭘 잘못했다고 구조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동자, 후배들에게 양보해야 할 때라는 말에 수긍하고 자진 퇴직하는 노동자, 언제 또 구조조정이 시작될지 모르니 불안에 떨며 지내느니 위로금 준다고 할 때 나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노동자 등이다. 회사의 구조조정 앞에서 널뛰는 이성과 감정이 뒤섞여 난장판이 되고 만다.
▲ 영화 <해야 할 일>의 한 장면. |
ⓒ 명필름 |
물론 이런 시선은 감내해야 할 게 많다. 이 영화는 좋게 말해 균형감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책임 또는 갈등 회피라고 폄하당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방향성에 동감한다. 좀 더 거시적으로 봐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보다 영화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내가 강 대리의 입장이라고 생각했을 때 너무나도 난감하고 괴로울 것 같다. 혹자는 인사팀 직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뭐가 힘드냐고 말할 수 있겠으나, '내가 뭐라고 저분들의 가족 생계까지 걸려 있는 일자리를 빼앗는지' 의문도 생기는 것이다.
영화는 '구조조정'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들의 이야기에서 종국엔 해야 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결국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밖에 없고 팀은 팀이 해야 할 일을 할 수밖에 없으며 회사는 회사가 해야 할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따로 또 같이 치열하게 이해관계를 따지며 이성과 감정들이 부딪히는 와중에 각자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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