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스토커냐” 전공의 구속 후폭풍…스토킹법 적용 배경은

김정민, 양수민 2024. 9. 23. 16: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의사·의대생의 신상 정보가 담긴 블랙리스트 '감사한 의사'를 유포한 사직 전공의 정 모씨가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경찰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0일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감사한 의사’ 명단)를 작성해 온라인에 게시‧배포한 사직 전공의 정모씨가 구속됐다. 정씨의 구속영장에 쓰인 혐의는 ‘스토킹처벌법’ 위반이었다. 의료계에선 정씨에게 스토킹처벌법 위반을 적용한 것을 두고 반발이 나왔다. 당초 경찰이 그에게 적용한 혐의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어서다.

정씨가 구속된 이튿날 열린 의사단체 집회에선 “죄목이 기가 막히다(이동욱 경기도 의사회 회장)”는 발언부터 튀어나왔다. 이 회장은 21일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을 당하는 여성이나 피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며 “정부가 사회적 약자인 전공의를 잡아넣는데 스토킹처벌법을 사용한다”며 비판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도 같은 날 “유치장에 가둘 대상은 의사를 악마화하면 이길 수 있고 개혁이 가능하다고 대통령에게 고한 간신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사회도 이날 성명에서 “본보기식 구속 조치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수위를 높였다.

구속율이 3% 정도로 낮은 스토킹처벌법을 통해 정씨가 구속됐다는 점도 의사 집단의 분노를 키운 촉진제가 됐다. 김경태 대한의사협회 감사는 “구속을 위한 구속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거된 이들은 1만 37명이었지만,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 구속된 이들은 371명으로 3.7% 수준에 불과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연합뉴스

그러나 검찰 등 수사기관은 법리 검토를 통해 정씨에게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영장을 청구하는 것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스토킹처벌법이 개정돼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제3자에게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거나 배포하는 행위도 스토킹 범죄 영역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타인의 개인정보를 그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정보통신망을 사용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게시하면, 올해부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온라인으로 개인정보를 퍼트리는 ‘온라인 스토킹’도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스토킹처벌법의 처벌 대상이어도 피의자 모두에게 해당 혐의로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아니다. 구속영장 발부를 위해서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거나 ▶증거인멸 염려, 도주할 염려, 주거 부정 가운데 하나 이상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검찰은 정씨의 증거인멸 혐의가 명확했다는 입장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정씨가 사용한 PC와 휴대폰 등을 수사하고 분석한 결과, 증거인멸 수법이 지나치게 치밀하고 정교해 구속사유가 충분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씨는 의도적으로 공용 PC를 사용하거나, 수사가 시작된 후 특정 프로그램 등을 사용해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고 한다. 정씨에 대한 구속 여부를 판단한 법원도 정씨에 대해 ‘증거인멸 염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씨는 의정 갈등 상황에서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된 첫 사례다. 검찰은 의대 증원에 반대해 발생한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일선 병원에 파견된 공보의 명단을 온라인에 유출한 전공의 2명과 공보의 5명 등 의사 11명과 의대생 2명 등 총 13명에 대한 수사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수사기관과 협조해 병원 현장으로의 복귀를 방해할 목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제작하고 유포하는 행위는 엄단할 방침이라고 밝혀왔다.

김정민‧양수민 기자 yang.sum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