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136명 수몰된 장생 탄광, 82년 만에 열릴까
[김지운 기자]
▲ 야마구치현 우베시 토코나미 해안의 장생 탄광 피야(배기통) |
ⓒ 김지운 |
1942년 2월 3일, 갱도의 누수로 인해 조선인 노동자 136명이 수몰된 지 82년 만에 유골발굴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노우에 요코 '장생 탄광 물비상(水非常)을 역사에 새기는 회' 대표의 마지막 당부다.
1932년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장생 탄광은 야마구치현 우베시 동부, 토코나미 해안에 위치한 해저 탄광으로 당시에도 갱도가 얕고 위험해 일본인 노동자들이 기피한 탄광이었다. 때문에 특히 조선인 노동자 수가 많아 '조선 탄광'으로 불렸다. 수몰사고 직전까지 약 10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1942년 2월 3일 오전 6시경 해안 갱구에서 1.1km 떨어진 갱도에서 누수가 발생, 해저 갱도의 천반이 무너졌고 오전 8시경 갱도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생매장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사고의 피해자는 183명. 그중 136명이 조선인 노동자였다. 사고 직후 '2차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라는 이유로 갱도 입구는 막혔고 그 후 갱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장생 탄광 수몰 사고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노우에 대표는 "일본 정부와 시민들은 장생 탄광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된다. 말로만 사과하고 사과받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번 장생 탄광의 유해 발굴 반환을 통해 한반도와 일본의 진정한 미래지향적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장생 탄광 피야를 설명하고 있는 이노우에 요코 대표 |
ⓒ 김지운 |
"사고가 났던 날 지역 언론 보도에서 수몰자 대부분이 구출되었다는 거짓 보도가 나갔고, 그 이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몰 사고 자체가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나고 이 사실이 우연히 밝혀지게 됐다. 어떻게든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뜻이 맞는 분들과 함께 1991년 '장생 탄광 물비상을 역사에 새기는 회'를 만들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수몰자들의 본적지에 '죽은 자로부터의 편지'를 보내면서 1992년에는 한국의 유족회가 결성됐다."
- '장생 탄광 물비상을 역사에 새기는 회'의 주요 활동은?
"처음에는 작은 모임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증언 자료의 수집, 피야(ピーヤ, 배기·배수통)의 보존, 추모비 건립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세웠고 1993년부터는 매년 유가족분들을 초청해서 추모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2013년에는 활동 22년 만에 '희생자 추모비'를 세웠다. 추모비에는 신원이 밝혀진 사망자의 본명을 새겼고, 한국·조선인 희생자로 기록된 돌기둥에 '강제연행'을 명시했다."
- '희생자 추모비'를 세울 때 힘들었던 점은?
"먼저 추모비를 세울 땅을 찾지 못해서 힘들었다. 그리고 추모비 건립 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힘들었다. 시민 모금으로 1600만 엔(한화 약 1억 4800만 원)을 모았다. 너무 큰 힘이 됐다. 다행히 땅 문제도 해결돼서 22년 만에 추모비를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추모비 건립에 대해서는 우베시도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기로 했었는데, 추모비문에 일본인으로서 반성과 사과를 넣는 문제로 우베시와 타협이 되지 않았다. 추모비문에 대해 타협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을 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행정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들의 힘으로 추모비를 세우자고 결단을 했다."
▲ 장생 탄광 희생자 추모비. 비에는 조선인 희생자들의 이름, 뒤쪽 추도문에는 강제동원을 사과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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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비 제막식 날, 우리는 추모비를 세웠다는 감격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유족들은 우리가 추모비를 세운 것으로 운동을 그만두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내비치고, 자신들은 유골을 발굴해서 고향에 데려가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이 말을 들은 당시 야마구치 대표가 2014년부터 유해 발굴을 제1목표로 삼아 다시 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유해 발굴을 결단하고 나서 2018년에 일본 정부와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장생 탄광 수몰사고가 조사 대상이긴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정부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역시 피해를 입은 나라가 제대로 일본 정부에 탄광의 유해 발굴을 요청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는 강제동원 노동자의 유골 반환 약속을 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장생 탄광 희생자의 유골은 깊이와 위치를 모르고 발굴이 어렵다는 입장을 바꾸고 있지 않다. 2023년 12월 8일에는 최초로 한국 유족이 참가한 대규모 정부 교섭을 실시했다. 지난해 정부 협상과 올해 2월 3일 추모집회를 전후로 한국과 일본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가 됐다. 지난해와 올해도 일본 국회에서 장생 탄광 문제 해결을 위해 외무부 장관과 후생노동성 장관에게 질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후생노동성은 유골 조사에 대해 기술적 논의 등 협상은 계속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즉각 유골 발굴 결단을 내려야 한다."
- 유골 발굴 사업의 현재 진행 상황은?
"우선 민간의 힘으로 갱구를 열고 수중 드론·잠수 조사 등 유골 조사에 정부가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싶다. 올해 갱구가 열리면 183명(조선인 136명)이 잠든 해저 탄광에 82년 만에 지상의 빛이 들어간다. 유골 조사도 가능하다. 우선은 많은 사업비가 필요하다. 예산은 800만 엔(한화 약 7400만 원)으로 계산하고 있다.
▲ 장생 탄광 갱구로 추정되는 곳. 수몰사고 82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확한 갱구의 위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
ⓒ 김지운 |
덧붙이는 글 | *장생 탄광 유골 발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한국어로 참여하는 방법 매뉴얼 참고) https://for-good.net/project/100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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