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을 보며 내 삶을 생각해 봅니다
[이정희 기자]
며칠 전 수업을 하는데 학생이 묻더군요. 선생님은 무엇이 되고 싶었냐고. 돌아보니, 전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이렇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제 소망을 이룬 건가요.
또 다른 질문, 심리학 등을 공부하다 보면 결국 삶의 목표는 '나'에 이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 새삼스럽더라구요. 한평생 무언가를 이루고 얻으려 애달프게 살아온 듯한데, 정작 내가 되고 싶은, 혹은 내가 성취해야 할 '나'에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 산다는 것은 |
ⓒ 도도 |
욘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던 욘은 첫사랑마저 뇌종양으로 잃었습니다. 그 '죽음'과 '상실'의 경험은 이제 욘으로 하여금 '누구든, 무엇이든 구하고 지키는 기사'가 되고 싶도록 만들었습니다.
반면 뒤늦게 태어난 동생으로 인해 애증의 골짜기에 빠진 안데쉬는 결혼한 지 30년이 지난 나이가 되도록 여전히 '나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없다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습니다. '상실'에 대한 두 사람의 선택이 참 다르죠.
'나는 내 체취를 맡는 걸 좋아합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과 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인터뷰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이니 만큼, 많은 인물들의 서사, 그 실마리는 안데쉬처럼 그곳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이 벗어 놓은 옷과 양말 냄새를 맡는 딕은 괴상한 취미네 싶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따라가 보면 그곳에는 불안한 가족 관계 속에서 돌봄을 받지 못했던 한 아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외로움을 '나쁜 짓'으로 해소하던 아이, 그 아이는 장미에서 '치유'의 향기를 맡습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체취는 '자존'의 향기입니다.
▲ 산다는 것은 |
ⓒ 도도 |
'내면 아이'는 주요한 심리적 기제입니다. 어린 시절에 뿌리를 내린 삶의 화두는 종종 사람들의 전 생애를 지배하곤 합니다. 어린 시절이라지만 그건 어렸던 시절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진 본연의 숙제가 아닐까요?
가끔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산다는 것>에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로 고민하는 인물들도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었던 라쎄는 자신이 엄마와 여동생의 옷을 입어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빠가 된 라쎄, 그의 내면에는 아무도 모르는 리사가 함께 합니다.
▲ 산다는 것은 |
ⓒ 도도 |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썼던 가면 '페르소나'는 사람들이 사회 생활을 하며 드러내는 외적 성격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로 쓰입니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가면)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주장'합니다.
아동복 브랜드 모델이었던 자신의 페르소나로 평생을 살아가는 마티아스처럼 말이죠. '페르소나를 통해 개인은 생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영할 수 있고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성립할 수 있게 된다고 하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때때로, 종종 그 페르소나와 자아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곤 합니다'(위키백과). 토르는 스스로 반문합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때로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고는 합니다. '
스렉코도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살아갑니다. '서커스'를 꿈꿨던 아이, 하지만 현재 그는 '의사'입니다.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쳇바퀴 같은 삶을 규칙적으로 살아내고, 홀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걸 제일 편안해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꿈속에서는 서커스단원인 스렉코, '불행하지는 않지만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요?'
▲ 산다는 것은 |
ⓒ 도도 |
'나는 일찍이 배웠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바꾸거나,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말라위에서 열 다섯 남매 중 하나로 태어난 그에게 의사는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포기하라 했습니다. 당연히 도움도 받지 못했지요. 하지만 그는 결국 의사가 되었습니다.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스렉코와 프란시스가 삶에 대해 생각하는 바는 참 다르지요. 어린 시절의 아픔에 대해 다른 선택을 한 욘과 안데쉬와 딕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나'라는 숙제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라쎄와 토르는 어떻구요.
<산다는 것은> 구인 구색의 삶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아마도 우리들 삶의 길도 저 아홉 명이 살아가는 구비구비 어디쯤인가에서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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