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동물 털·사람 옷에 찰싹…도꼬마리의 숨은 지혜

김현정 2024. 9.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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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더위는 참 길었습니다. 낮뿐만 아니라 열대야도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힘들어했는데요. 9월이 되면서 드디어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선선해지고 있습니다. 9월은 추석 명절도 있고 해서 풍성한 가을을 연상하게 하는데요. 여름이 강한 햇빛으로 열심히 광합성을 해서 열매를 살찌우는 시간이었다면 이제 가을은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열매는 식물들에게 마치 비행기와도 같아요. 저마다 모양은 다르지만 그 안에 씨앗들을 담아서 멀리멀리 여행을 시켜주니까요.
열매들의 다양한 생김새 중에도 정말 볼 때마다 신기하고 놀라운 열매가 있습니다. 바로 도꼬마리 열매인데요. 온몸을 고슴도치처럼 가시로 뒤덮고 있다가 털 달린 동물이나 사람들의 옷에 어느 틈엔가 붙어서 이동을 합니다. 옷에 붙는 성질 때문에 어릴 적에 따서 던지면서 많이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도꼬마리는 도심 한복판에선 좀 보기 드물고, 강변이나 둔덕의 양지바른 곳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54 도꼬마리

도꼬마리는 이름이 특이하죠. 옛 기록을 살펴보면 『향약구급방』(1236·추정)에서는 ‘도고체이(刀古體伊)’라 하고, 『구급간이방언해』(1489)에서는 돗귀마리, 『훈몽자회』(1527)에서는 ‘돗고마리’로 쓰고 있답니다. 안타깝게도 어디에도 명확한 의미는 나와있지 않아요. 학명은 ‘Xanthium strumarium’이에요. 크산티움(Xanthium)은 국화과를 의미하는데, 모발을 염색하는 데 사용되었던 ‘xanthos’(황색)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스트루마리움(strumarium)은 혹 모양 돌기를 의미한다고 하죠. 아마 꽃이 노랗게 피고 열매가 돌기처럼 생겨서 붙인 학명이 아닌가 싶어요. 도꼬마리 열매는 한약재로도 썼는데, 이때 이름은 창이자(蒼耳子)입니다. 완전히 익은 씨를 채취해 햇볕에 잘 말려 사용하며, 두통이나 치통·관절통 등에 약효가 있답니다. 요즘에는 열매 추출물이 피부에 좋다고 해서 화장품을 만들 때도 사용한다고 해요.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54 도꼬마리


도꼬마리는 열매의 모양 때문에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데요. 대추씨만 한 크기의 열매에 가시가 많이 나 있는데 그냥 단순한 가시가 아닙니다. 끝이 구부러진 갈고리 모양이라 그 갈고리를 걸어 도꼬마리 열매가 어딘가에 붙을 수 있죠. 이렇게 붙었다가 떼어지는 원리를 이용해서 발명된 제품도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찍찍이’라고 부르는 매직테이프, 즉 ‘벨크로테이프’입니다.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1947년 사냥을 나갔다가 옷에 붙어 온 도꼬마리 열매의 갈고리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했다고 하는데요. 정확히는 도꼬마리가 아니라 ‘산우엉’입니다. 우리나라의 우엉보다는 도꼬마리와 모양이 비슷해서 그렇게 번역한 것이라고 해요. 벨크로는 프랑스어 벨루어(velours·보풀이 있는 직물)와 크로셰(crochet·갈고리)의 합성어입니다.
우리 주변의 다양한 자연을 살펴보면 우리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영감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도꼬마리 열매에는 더욱더 놀라운 이야기가 있는데요. 열매 하나를 쪼개면 그 안에 씨앗이 두 개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둘이 크기가 달라요. 도꼬마리 열매가 땅에 떨어지면 두 개의 씨앗 중 한 개는 바로 이듬해 돋아나고 나머지 한 개는 좀 늦게 돋아나거나 몇 년 후에 돋아난다고 합니다. 왜 그런 작전을 쓰는 걸까요? 씨앗들이 모두 동시에 발아했는데 날씨가 너무 춥다거나 병충해가 생기면 모두 죽게 되겠죠. 그러니 시간차를 두는 겁니다. 정말 깜짝 놀랄만한 지혜인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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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단체로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 빨리 나오기를 기대해서 메뉴를 통일할 때가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나 주변 동료들과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이왕이면 한번에 똑 떨어지게 끝마치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제히 모두 완벽하고 정확하게 하려다가 오히려 실패하거나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죠. 조금은 느리거나 다른 선택을 하거나 해서 다양함을 유지하면 어떨까요. 세상이 우리에게 뭔가 더 열심히 앞만 보고 노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속도의 조절이 필요합니다. 지각하는 씨앗 덕택에 환경에 더욱 잘 적응해서 살아남게 되는 도꼬마리는 우리에게 천천히 여유를 갖고 살아도 된다는 것을 새삼 되새깁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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