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보상금? 말이 되나" 10억 거부한 장기표의 소신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9세.
올해 초만 해도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에 앞장서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고인을 덮친 것은 말기 담낭암이었다. 장 원장은 두 달 전인 7월 15일 “담낭암이 다른 장기까지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당혹스럽긴 하지만 할 만큼 했고, 이룰 만큼 이뤘으니 미련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주변에 투병 사실을 담담하게 밝혔다.
장 원장은 격동하던 1960~80년대 학생·노동 운동의 한복판에 섰던 운동권의 대부였다. 다만 평생을 재야에 몸담은 고인의 삶은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22일 통화에서 “60년 지기인 장 원장에게는 ‘현대판 애국지사(志士)’의 풍모가 흘렀다”며 “마음만 먹으면 주류에 속할 수 있었지만, 권력에 타협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국가와 인간에 대한 애정이 넘쳤고, 온갖 시대의 풍파에도 거목 같은 신념을 꺾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장 원장은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1995년 졸업하기까지 꼬박 29년이 걸렸다.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을 맡아 박정희 정부의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주도했고,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등에 연루돼 수배·수감 생활을 반복했다. 당시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인권운동가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렸다.
1980년대에도 장 원장은 민주통일국민회의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창립에 앞장섰고, 85년 청계천 피복노조 투쟁 사건, 86년 인천 5·3 사태 등을 주도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감옥에서만 9년을 보내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한 장 원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약 10억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를 거부했다. “누구나 자기 영역에서 국가에 기여하는데,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보상금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이유였다. 장 원장과 가까운 여권 관계자는 “장 원장은 누구보다 민주화 운동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이를 바탕으로 특권을 누리는 행태를 극도로 싫어했다”고 전했다.
고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는 전태일 열사다. 장 원장은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이 발생하자 전태일 열사의 모친인 이소선 여사를 찾아가 시신을 인수해 서울대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후에는 전태일 관련 자료를 수집한 뒤 조영래 변호사에게 전달해 ‘전태일 평전’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2009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았다. 이 여사는 2011년 세상을 떠나기 전 “기표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진실하고 바르게 살려고 했던 사람”이라며 “나의 영원한 스승”이라는 말을 남겼다.
1990년대 들어 고인은 제도권 정치 문턱을 꾸준히 두드렸다. “재야 운동을 하면서 품었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국회 입성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1990년 이재오 이사장, 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과 민중당을 창당했고, 이후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등을 창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2년 14대 총선 이후 7차례나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모두 낙선했다. 특히 21대 총선에서는 보수 정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입당해 경남 김해을에 공천됐지만 고배를 마셨다. 2021년에는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로 나섰기도 했다.
이 즈음 고인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겨냥해 “국정 파탄의 장본인”이라고 작심한듯 비판하자 진보 진영에서는 “변절자”라는 반격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장 원장은 “진짜 변절은 진보의 탈을 쓰고도 수구 세력으로 변모한 민주당”이라고 반박했다. 고인은 지난해부터는 국회의원 세비와 보좌진 규모를 줄이는 특권 폐지 운동에 매진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장기표 선생은 노동 운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우리 시대를 지킨 진정한 귀감이셨다”며 “장기표 선생의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김문수 장관은 이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장 원장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해 유족에게 전달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26일이다. 장지는 경기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74)씨와 딸 하원, 보원씨가 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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