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장기표가 운동권 정치인들에게 남긴 메시지

2024. 9. 2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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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국가발전 기여한다’며 민주화 보상금 거부


민주화 재탕·삼탕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 성찰해야


영원한 시민운동가로 불리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어제 세상을 떠났다. 재야운동에서 시작해 1989년 민중당,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한 ‘아웃사이더’였던 그는 일곱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세속적 현실 정치에선 실패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걸어 온 이력서보다 중요한 건 그가 주창해 온 시대정신이었다. 장 원장은 김영삼 정부 당시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이 제정돼 10억원이 넘는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청구조차 하지 않았다. “농사짓는 사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나 자기의 영역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데, 민주화운동 좀 했다고 보상금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게 거부의 이유였다. “또 나만 민주화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 중 (민주화운동) 당시 최루탄 가스 안 마셔 본 국민이 얼마 있겠나. 넥타이 부대도 많이 민주화에 참여하지 않았느냐”고도 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메시지였다.

청년 시절 민주화운동 한 걸 무슨 훈장처럼 재탕·삼탕 우려먹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자녀에게까지 수업료를 면제하고 취업 가산점을 부여하는 법안까지 버젓이 발의하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전당대회 때 돈봉투를 뿌리다 들켜도 ‘정치보복’이라 하고, 위안부 할머니를 후원한다며 국민에게 돈을 거둬 횡령이나 하던 이들이 ‘진보’ ‘민주화 세력’이라며 완장을 찬 기이한 정치판이었다. 장기표가 보여준 ‘돈보다 명예, 물질보다 정신’의 가치를 절반이라도 본받길 바란다.

장 원장은 생전에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에도 헌신했다. 1억5000만원이 넘는 연봉에 180가지가량의 특혜를 누리며 정쟁을 일삼는 국회를 그냥 두고는 저출산 1위, 자살률 1위의 대한민국을 구원할 수 없다고 믿었다. 실제 정쟁만 일삼는 국회의원들에게 항공기 비즈니스석에 KTX 특실까지 나랏돈으로 제공하고 국회가 열리지 않아도, 심지어 구속돼 있어도 세비가 나오는 걸 이해할 국민은 많지 않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어제 “고인이 강조했던 특권 내려놓기를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대표도 지난 총선 당시 국회의원 세비를 중위소득으로 하자고 제안했었다. 장기표가 정치권에 남긴 미완의 과제들이다.

장 원장은 암 투병 중 여러 인터뷰에서 진보·보수 이념을 초월해 ‘합리적 사고’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정치권의 편 가르기에 편승하거나 맹목적 지지를 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 지지해 왔던 것이라 해도 그게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당부의 말도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였다. 장기표가 남긴, 또 하나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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