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우리 아이들의 SNS 생활
한 달 전 이 자리에 ‘10대 파고든 딥페이크 성범죄’란 칼럼을 쓰고 나서, 많은 여고생에게 e메일을 받았다. 친구 중에 피해자도 있고 공포와 불안이 컸는데 어른과 사회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원망스러웠다며 앞으로 더 많은 기사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현실의 심각성을 더 빨리 알지 못한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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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페이크 등 범죄 온상 소셜미디어
‘청소년보호 SNS 규제’ 세계적 확산
우리도 본격적 논의의 장 마련해야
」
알려진 대로 지난해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 4명 중 3명이 10대다. ‘지인 능욕’ 형태이니 피해자도 10대가 많다. 심지어 엄마, 누나 등 가족까지 대상으로 삼으며 놀이나 장난으로 여긴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예전 같으면 삼삼오오 ‘빨간책’을 돌려보고 성적 공상에 만족했을 아이들이 ‘딥페이크 포르노 대량 생산 유포’에 참여하는 범죄자가 되는 세상이다. 손쉬운 디지털 AI 기술, 텔레그램처럼 보안성 강한 SNS가 없었다면 불가했을 일이다. 가상 세계 속 과도한 포르노에 맛 들인 아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친밀한 성과 사랑을 추구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성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튜브에도 불법 유해 콘텐트가 넘친다. 조직폭력배 영상, 불법 온라인 도박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내용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쉽게 볼 수 있다. SNS에서는 어른이 아이인 척 위장해도 알 수 없어 범죄에도 취약하다.
2018년 SNS 기업들에 불법 유해 콘텐트 삭제 의무를 부과한 독일의 네트워크집행법 발효 이후 거대 플랫폼들에 사회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 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호주는 연내 세계 최초로 SNS 연령제한법(14~16세 이전까지 SNS 이용 금지)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청소년 폭력 사건의 한 원인으로 SNS가 지목되면서다.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도 제각각 아동·청소년의 SNS 계정 개설 연령 제한, 하루 이용시간 제한, 알고리즘 추천 제한, 부모의 감독 강화 등을 담은 입법화 움직임이 활발하다. 표현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삼는 미국에서도 지난 7월 악성 콘텐트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할 의무를 플랫폼에 부과하는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거세어지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지난 17일부터 10대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앞으로 18세 미만 이용자는 성인과 달리 알고리즘 추천, 사용시간 등에 제한이 있는 ‘제한적인 10대 계정’을 쓰게 된다. 우선은 미국·영국·호주·캐나다부터 실시하고(EU는 연말까지),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불안세대』를 쓴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1996년 이후에 태어나 가상 세계에서 사춘기를 보낸 첫 세대인 Z세대를 불안과 우울증, 자해와 자살 비율이 이전 세대보다 대폭 증가한 ‘불안세대’라 칭하며, 불안세대가 된 이유를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보호”에서 찾았다. 현실에서는 안전에 대한 강박으로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이 온라인에서는 무방비 상태로 방치한다는 것이다. 하이트는 ‘놀이 중심’ 아동기가 ‘스마트폰 중심’ 아동기로 재편되면서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게 발달 과정이 변화한 결과가 2010년대 청소년 정신질환의 급증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해법은 16세 전까지 SNS 사용 금지, 14세 전까지 스마트폰 사용 금지 등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SNS 이용 한도 제한 등 청소년 보호를 위한 여러 법안이 발의돼 있다. 물론 규제가 능사는 아니고, 특히 우리에게는 청소년들이 심야시간대 게임을 하지 못하게 인터넷 접속을 막는 ‘셧다운제’의 실패라는 경험이 있으니 보다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당시 실효성은 없고 표현의 자유만 훼손한다는 비판이 컸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게임 중독을 우려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빌 게이츠 같은 IT업계 거물들이 정작 자기 자녀들의 스마트폰 사용은 엄격하게 제한했다는 것도 시사점이 크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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