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외과수술식 수사
부패 범죄 신속 마무리하고
민생 범죄 척결에 집중해야
검찰의 ‘외과수술식 수사’는 특정 대상을 탈탈 터는 이른바 저인망식 수사, 별건 수사에서 벗어나자는 뜻에서 자주 언급됐다. 2005년 두산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 발표 때 검찰은 “기업에 대한 해부식 수사가 아니라 정밀 외과수술식 수사로 기업과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했다”고 자평했다.
외과수술식 수사를 강조했던 검찰총장으로는 박근혜정부 시절 임명된 김진태 전 총장이 꼽힌다. 특수통인 김 전 총장은 취임 직후부터 꾸준히 절제된 특별수사를 강조했다. 퇴임 직전에는 “문제가 드러난 특정 부위가 아니라 사람이나 기업 전체를 의사가 종합진단하듯 수사하면 표적수사 비난을 초래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 전 총장 체제에서 진행된 포스코 비리 의혹 수사는 8개월간 장기화돼 외과수술과 거리가 멀다는 비판도 받았다. 당시만 해도 검찰 수사가 6개월을 넘어가면 너무 길다는 지적이 나왔고 1년 넘게 수사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검찰 수장들도 강조했던 외과수술식 수사는 박근혜정부 말기 국정농단 사태와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수사를 거치며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적폐청산 수사는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진두지휘했다. 전직 대통령부터 대법원장, 장차관 등 고위직은 물론 각 부처 공무원까지 수백명이 수사 대상이 됐고 5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법조계 원로들은 절제와는 거리가 있었던 수사와 검찰권 확장에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청와대의 적폐청산 구호 아래 가동된 수사는 거침없었다. 검찰이 혐의를 탈탈 털어 기소하는 ‘트럭 기소’가 검찰의 ‘뉴 노멀’로 자리 잡았다는 말도 나왔다. 특히 통치나 행정 작용에 가까운 행위에 직권남용죄를 적극 적용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처벌이 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문재인정부가 스스로 키운 검찰의 칼날은 결국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의혹 등을 겨눴다. 당시 총장이었던 윤 대통령을 징계하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했지만 ‘내로남불’ 논란 끝에 결국 정권을 내줬다. 윤석열정부 들어 검찰은 본격적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수사선상에 올렸다.
비리 수사는 검찰의 당연한 책무지만, 언제부턴가 검찰이 정치적 사건을 외과수술식이 아닌 해부식으로 접근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검찰 안팎에서 나온다. 특정 대상의 여러 혐의를 동시다발적으로 파고드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의도를 의심받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특별수사팀을 꾸려 약 1년간 언론사 관계자 등을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명예훼손 사건을 특수부가 나서서 수사할 일인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 사건의 경우 유무죄는 법원 판결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수사가 아직도 종결되지 않았다는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자신 있게 기소하고, 그렇지 않다면 신속하게 불기소해야 하는데, 사건을 질질 끌어 불필요한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공화국’ 비판마저 제기되는 상황에서 최근 심우정 신임 검찰총장은 한동안 잊혔던 절제된 수사를 다시 강조했다. 심 총장은 취임사에서 “검찰 직접수사는 꼭 필요한 곳에 한정돼야 한다”며 “신속하고 정밀하게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를 통해 국민들이 검찰 수사는 믿을 수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하자”고 당부했다. 심 총장은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마약, 사이버 레커 등 민생범죄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단순 구호에 그치지 않게 조직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 그간 검찰에선 특수수사에 다수 인력이 배치돼 형사부 대응 능력이 떨어졌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검찰이 공정성 논란을 극복하려면 주요 부패 범죄는 신속한 외과수술식 수사로 마무리하고, 민생범죄 척결에 주력해야 한다. 결국 국민을 범죄에서 지키는 본연의 일에 집중할 때 검찰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
나성원 사회부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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