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규의 달에서 화성까지] “박사님 연봉은 얼마예요?”
강의를 듣는 아이들의 눈이 빛났다. 영화 ‘마션’ 얘기를 하다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 한국계 우주인인 조니 김에 관해 말하려던 참이다. 그는 수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의사다. 또한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에 들어가 100회 넘는 이라크전 작전에 참여했다. 이어 1600대 1의 경쟁을 뚫고 아르테미스 우주인이 된 그는 내년 3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올라가 과학 임무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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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정년 없는 미 항공우주국
민관 구분 없이 경력 따라 보수
기업·출연연 연봉 차 큰 한국
박사급 두뇌들의 연봉 고민 커
」
50여 년 전인 1971년 여름, NASA는 아폴로 15호를 쐈다. 당시에 승무원들은 역사에 남을 진귀한 기록을 세운다. 사령선 밖에서 처음 선외 활동(EVA)을 했으며, 로버라고 부르는 월면차를 타고 돌아다닌 최초 임무였다. 60여 년 뒤 펼쳐질 아르테미스 탐사의 틀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지구로 돌아온 뒤, 집중 조사를 받아야 했다. 달착륙 기념우표에 특별 소인을 찍은 봉투 300여 장을 몰래 반입했다가 귀환했는데 그게 발각됐다. 중개업자에게 속아 규정을 어긴 대가로 NASA는 그들의 우주 비행 자격을 박탈한다. 달 착륙선 조종사는 승무원들이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NASA 우주인의 생명 보험 혜택이 취소된 때와 맞물렸다. 그들의 봉급은 예상외로 적다.
소득세 감면해 주는 유럽 우주국
NASA 직원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연방정부 기관인 NASA는 미국 공무원 일반직 보수표(GS)를 따른다. GS는 1-15등급, 1-10호봉으로 나누며, 성과급과 상여금은 없고 지역 물가와 맞춘 기본급만 준다. NASA 본부와 고다드우주비행센터(GSFC)가 있는 워싱턴 DC-볼티모어 지역의 박사 올해 초임은 약 1억1000만원, GS-15 7-10등급은 2억6000만원을 받는다. 제트추진연구소(JPL)는 예외다. NASA 소속으로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이 운영하는 연방정부 출연 연구개발센터(FFRDC)라서다. JPL은 LA 지역 보수표에 약 1.5를 곱해 올해 박사 초임은 약 1억7000만원, GS-15 6-10등급은 3억9000만원을 받는다. NASA 과학자와 항공우주 엔지니어 연봉 중간값은 1억8100만원이다. NASA는 마지막 연봉 60~80%의 연금을, JPL은 5000만원이 넘는 퇴직준비금을 따로 준다. 그들은 공식 정년이 없다.
이번에는 유럽 항공우주 엔지니어의 평균연봉을 검색했다. 유럽우주국(ESA)과 프랑스 국립 우주센터(CNES)는 1억5000만원, 독일 항공우주센터(DLR)는 1억6000만원인데, 러시아 로스코스모스(ROSCOSMOS)는 한참 낮다. 인터넷 구직 사이트 글래스도어닷컴에는 NASA와 CNES, 로스코스모스 직원의 직장 만족도가 5점 만점에 각각 3.9, 3.5, 2.7이라고 나온다. 연봉의 위력은 크다. ESA는 NASA처럼 매년 연봉을 물가와 연동하며, 주재국 정부는 소득세를 감면해준다. 한국은 생활 물가 상승률이 OECD 3위지만, 급여는 제자리걸음이다.
NASA와 미국 우주기업의 항공우주 엔지니어 연봉을 비교해봤다. NASA는 1억4000만원과 2억1000만원 사이다. 최근 ‘스타 라이너’의 기체 결함으로 ISS 우주인을 태우지 못해 체면을 구긴 보잉은 약 1억3000만원에서 2억원, NASA 화성탐사선의 대기 진입 캡슐인 에어로셸을 전담하는 록히드 마틴도 마찬가지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주계약자인 노스럽 그루먼도 1억3000만원과 1억8000만원 범위다. 발이 묶인 ISS 우주인을 태워 귀환하게 된 스페이스X는 2000만~3000만원을 더 얹었다. 민간과 미국 정부 부문의 급여 수준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예외는 있다. 스페이스X의 전자·기계·전산 엔지니어의 최고 연봉은 3억원에서 8억원대까지 간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문가의 분야와 경력·자격이 같다면 기업과 대학·정부 어디에서 일하든 보수를 맞춘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고 들었다. 산학연 생태계가 탄탄하게 자리잡아 살아 숨쉬며, 이직(移職) 장벽이 낮은 이유다. 한국은?
출연연 두뇌들의 이직 고민
H사 전 직원에게 물었다. 박사급 항공우주 엔지니어의 입사 2년 차 연봉은 1억원, 20년 차는 2억에 조금 못 미친다. 같은 그룹 우주 부문 계열사 연봉은 NASA와 보잉, 록히드 마틴급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에서 그 업체의 생산직 복지 수준을 알게 됐다. 성과급 200%와 상여금 800%는 물론 본인, 가족에게 연간 1000만원 의료비를 지원하며, 근무지와 거주지가 다르면 5년간 월세 45만원을 보태 준다. 자녀 등록금과 경조사비, 명절 떡값은 정부 출연연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혜택이다. 이직은 그래서 한 방향으로만 일어난다.
오래전 일이다. 보험설계사가 필자 동료 부부를 상담했는데, 연구단지에서 일하는 두 사람 연봉을 한 사람 것으로 착각했다. 직업상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인데 말이다. 아직 상황은 그대로다. 요즘은 박사학위자가 출연연 정규직이 되면 사십이 넘는다. 학·석·박사와 군 복무, 두세 차례 박사후연구원까지 20년, 이후 제대로 봉급을 받는 기간은 고작 20년이다. 더구나 환갑 지나면 정년까지 2년간 연봉이 내리막길로 치닫는 ‘임금 피크’에 들어간다. 어찌해서 예순다섯까지 일하는 기회가 와도 손에 쥐는 건 반토막 난 봉급. 준비 안 된 노후는 두렵다. 강의를 마치자 느닷없이 한 초등학생이 따져 묻는다. “박사님 연봉은 얼마예요?”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우주탐사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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