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의 시선] 넘쳐나는 교육교부금, 당연한 돈은 없다

하현옥 2024. 9. 23. 00: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현옥 논설위원

이 정도면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넘어 ‘넘쳐나는 곳간’에 가깝다. 나라 살림에 따라 받는 돈은 들쑥날쑥하지만, 그리 쪼들리지도 않고 갈수록 넉넉해진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액수가 늘지만, 이를 나눠쓸 사람은 줄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 내려보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이야기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저출산 영향으로 올해 524만8000명인 학령인구는 2028년 456만2000명으로 13.1% 줄어든다. 반면 교육교부금은 향후 4년간 연평균 5조원씩 늘어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8일 국회에 제출한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교육교부금은 올해 68조9000억원에서 2028년 88조7000억원으로 늘어난다. 4년간 19조8000억원(28.8%)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되면 학생 1인당 교부금은 올해 1310만원에서 2028년 1940만원으로 48.1%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교육교부금이 의무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8%에서 20.5%로 뛸 전망이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교육교부금은 올해 68조8천732억원에서 2028년 88조6천871억원으로 19조8천139억원(28.8%) 증가하게 된다. 연합뉴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며 벌어지는 예산 삭감의 서슬 퍼런 칼날을 피해 교육교부금만 ‘역주행’을 하는 건 경직된 구조 탓이다.

초·중등 교육 지원에 쓰이는 교육교부금은 1972년 도입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그 해 걷힌 내국세에서 20.79%를 의무적으로 떼어내 조성하게 돼 있다. 여기에 교육세 일부도 붙는다. 사람만이 유일한 자산이었던 시절 어려운 나라 살림에도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 법으로 못 박아 둔 것이다.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안정적인 재원 확보 방식이다.

학생 수는 줄어갔지만, 경제가 성장하며 ‘무조건 보장’되는 교육교부금의 몸집은 커져만 갔다. 2015년 39조원에서 지난해 75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세수가 줄면서 올해 교육교부금은 지난해보다 6조9000억원 감소했지만, 충격은 크지 않다. 학생 수가 줄어든 데다, 미처 다 쓰지 못한 교부금을 쟁여놓은 여윳돈(기금)도 상당한 덕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시·도 교육청이 운영하는 기금에 쌓여 있는 돈은 18조6975조원에 이른다. 사상 최대치(21조4000억원)를 기록했던 2022년보다 줄었지만, 여유가 있다.

2015년 39조4000억원이던 교육교부금은 지난해 75조8000억원까지 불어났다. 학생 1인당 교육교부금도 1000만원을 넘기며 각 교육청은 2022년에만 7조원을 남겼다. 김경진 기자

「 학생 줄지만 일정액 무조건 보장
교육교부금, 4년간 20조원 늘 듯
성과·필요에 따라 재정 배분해야

수요와 무관하게 법에서 규정한 일정액을 배정하다 보니 재정 배분과 집행의 비효율도 빚어진다. 나라 곳간이 넉넉지 않은 요즘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2~3년 전만 해도 전국 시·도 교육청은 수조 원의 ‘돈벼락’을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으로 내국세 수입이 증가하며 교육교부금이 갑자기 늘어나자, 예산 소진을 위해 교육청은 각종 지원금 명목으로 현금을 뿌리거나 태블릿PC를 지급하는 등 선심성 정책을 남발했다. 실제로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각 시·도 교육청이 현금·복지성 지원사업에만 3조5000억원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교부금이 ‘교육청의 쌈짓돈’이 되면서 학생과 교육이 아닌 교육감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쓰일 위험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인구축소사회에 적합한 초중고 교육 행정 및 재정 개편방안’)에 따르면 교육감이 재량권을 가진 목적사업비 배분액이 교육감의 선거 득표율이 더 높은 지역에서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에 대한 책임없이 교육감이 세금으로 선심 지출을 할 여지를 주는 셈이다.

학생 수가 급증하고 교육 환경이 열악했던 시절에는 교육에 재정을 ‘무조건 보장’하는 현행 교육교부금 방식이 필요하고 유효했다. 하지만 학생 수가 줄고 나랏빚이 급증한 상황에서 더는 적절치 않다. 교육교부금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김지윤 일러스트


물론 교육계의 반발이 상당하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을 위한 돈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부터 교육교부금을 줄이면 공교육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이미 넘치는 교육 재정을 더 늘린다고 사교육의 성행과 공교육의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방만하게 쓴 교육 재정은 국가 채무를 늘려 미래 세대가 경제 활동의 주체가 됐을 때 갚아야 할 나랏빚만 키울 뿐이다.

교육교부금 제도 개선은 과도한 경직성으로 인해 빚어지는 과잉 예산과 그로 인한 낭비를 막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교육 수요에 맞춰 적절한 재정을 투입하고, 성과와 필요에 따라 재정을 배분해야 한다. 세금을 제대로 쓰는 데 있어서 교육교부금만 예외가 돼서는 안 된다. 당연한 돈은 없다.

하현옥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