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인사이드 아트] 미적 취향의 사회학

2024. 9. 2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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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국제비엔날레와 아트페어, 미술관·갤러리의 기획전 행사들로 분주한 9월의 ‘대한민국 미술축제’의 한가운데서 미적 취향과 안목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세계화에 따른 문화교류의 확대와 소셜미디어(SNS)의 영향력은 새로운 문화 소비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고, 빠른 세대교체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화시켰다. 우리는 음식이나 패션, 공연이나 전시 관람, 독서와 여가 활동 등을 통해 자신이 선호하는 문화적 취향을 발견하고 일상에서 향유한다. SNS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스타일과 미적 감각을 드러낸다. 취향은 자신의 기질, 성향,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이자 때로는 문화적 허영, 인정 욕구, 과시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 취향은 개인 기질·정체성 반영
최근 문화현상 특징은 ‘잡식성’
본성과 양육에 의해 훈련돼야

프리즈 서울 2024에서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을 감상 중인 관람객. [사진 이준]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은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지만 사회적인 구조와 관습(habitus)을 통해 계층적 차이를 드러낸다고 했다. 그가 『구별짓기』에서 말하는 취향의 사회학적 연구는 취향이 어떻게 형성되고, 지배적 미학으로 자리 잡는가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20세기 이후 미국 추상미술의 양식적 승리는 페기 구겐하임 같은 미술품 수집가, 후원자의 미적 취향(아방가르드와 추상표현주의)이나 자유주의를 표방한 미국 정부와 미술기관, 비평가의 지원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반면 미소 냉전 시대에 사회주의 붕괴와 리얼리즘의 양식적 몰락은 지배자의 국가이념이 취향에 반영된 사례이다. 한국의 단색화와 추상미술이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현상에도 20세기 서구권, 특히 미국 미술의 영향력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미술비평가 보리스 그로이스는 예술세계 내의 역학관계를 조사하면서 미적 취향이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고 검증할 수 있는 미술관 같은 기관, 비평가의 담론, 큐레이터가 제시하는 큐레이션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Art Power』, MIT Press, 2008)

취향은 과거 권력을 가진 문화 지배층의 영향력에서 이제 다양성의 문화와 중산층의 소비문화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국제비엔날레와 미술시장에서도 서구권 중심의 현대미술 역사에서 비서구권, 아시아와 흑인, 여성, 원주민 미술 등 문화적 다양성을 지향한다. 고급문화의 소비가 중산층으로 확대하면서 세계적 명품기업은 미술관을 설립하거나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브랜드 가치에 차별화된 미적 취향을 추가하고 있다. 인플루언서의 대중적인 영향력이 확대되고, 연예인 작가, ‘아트테이너’의 참여도 눈에 띈다. 세대에 따라 취향도 변화한다. 젊은 세대들은 오래된 전통이나 근대미술보다는 동시대의 미술이나 디지털 자산(NFT)과 같은 새로운 경험, 혹은 피규어와 캐릭터를 활용한 팝아트 등 그들에 익숙한 대중문화, 몰입형 미디어 아트에 보다 친숙하다. 취향의 변화는 미술관, 미술시장, 갤러리스트들의 사업 전략을 수정하도록 요구한다.

간송미술관 몰입형 미디어아트 중 ‘미인도’ 전시 일부 모습. 간송미술관은 이머시브&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콘텐츠를 통해 간송컬렉션의 가치와 의미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했다. 간송미술관


20세기 후반 이후 문화현상의 특징을 사회학자 리처드 피터슨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소비하는 ‘문화적 잡식성(Cultural Omnivore)’으로 비유했다. 고급문화에 대한 상류층의 독점적 소비가 아니라 잡식성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문화적 취향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취향의 민주화와 문화적 포용성은 교육받은 중산층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문화 소비로 미술시장에 나타난다. 슈퍼리치를 위한 최고의 블루칩 작가부터 추상미술이나 개념미술, 신표현·신형상미술, 팝아트와 키치적인 작품에 이르기까지 미술시장, 글로벌 아트페어의 양식적 스펙트럼은 실로 다양하다. 문화 소비자들의 현대미술에 대한 흥미는 예술 자체에 대한 감성적 요인뿐만 아니라 고급문화에 대한 열망, 투자에 대한 관심, 미술시장의 취향 저격과 SNS 시대의 대중심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취향은 자주 노출되거나 익숙한 현상뿐만 아니라 새롭고 신선한 감각에도 경험적·선택적으로 반응한다. 때로는 선택적 취향을 은연중 강요받기도 한다. 토마스 카민스키(로욜라대 영문학)는 예술적 취향이 개인적이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종의 능력으로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훈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우리는 안목(眼目)이라고도 하는데, 사물이나 예술에 대한 식견·분별력을 말한다. 취향의 발견과 미적 경험, 역사와 교육을 통해서 안목은 성장하고, 이를 통해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심미안과 통찰력을 얻게 된다. 우리의 취향 형성이 작가의 명성·평판이나 일종의 서사(소문)에 기댄 감동이나 공감이 아닌지 솔직하게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미적 취향의 발견은 타인을 향한 시선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의미를 통해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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