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대가족의 요새형 아파트, 푸젠 토루
15m의 높은 흙벽을 지름 60m의 큰 원형으로 쌓고 벽 내부에 건물 띠를 두르고 지붕을 얹었다. 냉전 시기, 미국의 고공 정찰기 U2기가 이 희한한 구조물을 발견하고 비밀 핵미사일 기지라고 오인했다는 일화도 있다. 중국 푸젠(福建)성 일대에 2만여 개나 산재한 이 구조물들은 800년 전부터 세워진 집합주택, 토루(土樓)다.
60~70세대의 큰 토루부터 3~5세대의 작은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고, 원형 토루가 대표적이지만 사각형이나 오각형 등 형태도 여럿이다. 13세기 송-원 교체기나 17세기 명-청 교체기 등 급변기에 주로 발생했다. 정치 경제적 문제로 남쪽 오지로 집단 이주한 중앙의 기득권층들이 개발한 주택 유형이다. 이 하카(客家)인들은 토착 비적들의 약탈에 맞서 요새를 세우고, 낯선 곳에서 일족끼리 뭉쳐 살아야 했다.
2m의 두꺼운 흙벽은 찹쌀과 나무 조각들을 섞어 견고하게 만들었다. 흙벽에 기대어 3~5층의 목조 틀을 세워 방을 만들고 안마당 쪽으로 통행용 복도를 두었다. 한 세대는 1층에 주방, 2층에 창고, 3층 이상에 침실을 둔 수직 복층형이다. 주방들로 둘러싼 안마당 중앙에 사당을 두어 씨족의 조상을 모시고, 객실과 가축우리, 우물 등 공동시설을 두었다. 외벽에는 일절 창이 없고 상부에 방어용 총구들만 나 있다. 반면 내부는 행랑으로 둘러싼 개방된 곳으로 모든 일상의 공용공간이다.
‘토루의 왕’이라는 승계루(承啓樓)는 1709년에 건설한 최대 토루로 4겹의 동심원 구조다. 중심의 1륜은 사당, 2륜은 공동서고, 3륜은 2개 층의 객실, 외륜은 4개 층의 세대들로 총 370실이다. 최대 80세대, 400명이 거주했다니 요즘 고층 아파트 한 동에 버금간다. 19~20세기, 푸젠 출신의 화교들은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고향에 다시 거대한 토루와 기념물을 세워 토루의 전성기를 맞았다. 토루는 ‘대가족이 화목하면 만사가 성취된다’는 중국식 씨족주의의 소왕국이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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