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받을 용기 냈다”…장애아와 살아가는 거북맘의 외침

나원정 2024. 9. 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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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엄마의 실화로 만든 영화 ‘그녀에게’ 중 한 장면. [사진 영화로운형제]

엘리트를 지향하며 ‘대치동 키드’로 자란 정치부 기자 상연(김재화). 그의 삶이 결혼 3년 만에 얻은 쌍둥이 아들의 발달장애 판정 후 180도 뒤집혔다.

일간지 기자 출신 ‘거북맘’(발달장애아 엄마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 류승연(47) 작가와 자폐성 지적장애 2급 아들의 실화 영화 ‘그녀에게’(11일 개봉) 얘기다.

“장애인이란 존재가 내 삶에 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던 그가 장애인에 대해 “오래 사랑받을 사람(長愛人)”이라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10년 간의 세월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류 작가가 아들의 출산부터 초등 2년까지 담아 2018년 펴낸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푸른숲)이 원작으로, 이를 읽은 이상철 감독의 영화화 제안에 그가 직접 영화 각색까지 참여했다. 영화는 부산 국제영화제, 서울 독립영화제, 말레이시아 국제영화제 등에도 초청됐다.

장애아 엄마의 실화로 만든 영화 ‘그녀에게’ 원작자 류승연. [사진 영화로운형제]

개봉 전 서울 신당동 영화홍보사 사무실에서 류 작가를 만났다. 키가 훌쩍 자란 중3 아들을 씻기고 밥 먹이고 옷 입혀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왔다는 그는 “원작 에세이를 썼던 8년 전에 비해 장애에 대한 사회 제도와 시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지금 영화로 나오는 데 위화감이 없었다. 그래서 슬펐다”고 말했다.

Q :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A : “탈장 수술하고 마취에 잠든 아들 손을 잡고 상연이 ‘깨어나지 않아도 돼. 더는 이런 세상에서 살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발달장애아 엄마의 삶의 무게, 감정이 응축된 말이다.”

Q : 쌍둥이 중 비장애인 딸의 ‘차라리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대사도 있다.
A : “제 딸이 초등 1년 때 했던 말이다. 그 때는 ‘너까지 그러면 엄마 못 살아!’라고 소리쳤는데, 지금은 솔직히 표현해준 딸이 고맙다. 아들에게만 향했던 시간·관심·사랑·돈을 딸과 남편, 제 자신에게 골고루 나누게 된 계기였다.”
그는 “발달장애 자녀를 공개한 배우 오윤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에 발달장애·자폐에 대한 편견이 많이 희석됐다”면서도 “교권 침해 문제가 대두되면서 발달장애인 부모를 괴물처럼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에게’ 같은 영화가 의미가 있다”며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을 이해한다면 그렇게 쉽게 혐오를 드러낼 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아들은 초등 통합교육을 거쳐 특수학교로 진학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폐쇄적 삶의 여파로 퇴행하는 아들을 보며 류 작가는 한국 교육 시스템의 사각지대도 느꼈다. “한글을 모르는 최중증 발달장애아는 완전히 고립된 세계에 갇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특수교육도 인지학습, 진도 중심 분위기가 있어서 교육을 못 따라가는 학생을 지원하고 이끌어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교사 개개인에 떠넘긴 상태”라고 비판했다.

곧 나올 새 에세이집 『아들이 사는 세계』(푸른숲)에는 아들의 청소년기 삶을 토대로 교육 시스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미움 받을 용기를 냈죠. 침묵하면 현실이 결코 아름다워지지 않더군요. 장애아와 가족이 이해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영화 ‘그녀에게’가 작은 씨앗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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