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공원에 피어난 꽃에 내 마음도 물들다

박세원 2024. 9. 2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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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지루한 여름의 끝, 오래 기다렸다.

숲으로 이뤄진 상림공원에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초록숲 속 꽃무릇이 빨갛게 단장을 한 채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초록 소나무와 120여 종의 나무가 우거진 숲에 오만한 자태를 뽐내고 피어난 빨간 꽃무릇이 군락을 이루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비가 내린 뒤에는 한 뼘 쯤 더 자란 꿈과 함께 젖어 있을 그 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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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원 기자]

▲ 초록숲과 빨간 꽃무릇 초록숲과 대비되는 빨간 꽃무릇이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에 내 마음도 빨갛게 물든다
ⓒ 박세원
▲ 살며시 피어난 꽃무릇 상림공원 코스 중 시냇물이 흐르는 숲 사이에 한 줄기 햇살과 함께 언뜻언뜻 보이는 빨간꽃무릇이 아름다운 오후
ⓒ 박세원
길고도 지루한 여름의 끝, 오래 기다렸다. 뜨거웠던 한 낮의 태양을 빛으로 빨아 들여 피워낸 꽃, 빨간 정열의 꽃, 꽃무릇이 마른 땅에 꽃대를 힘껏 밀어 올려 꽃을 피웠다.

전라도에서 함안 상림공원을 찾은 것은 올해만 두 번째다. 지난 7월에는 악양공원의 연꽃마당을 다녀가면서 연꽃을 카메라에 담았다. 싱그러움을 한껏 청아함으로 피워낸 백련은 함안 사람들의 순수함을 닮은 꽃이었다면 강주리 언덕의 노란 해바라기는 '나의 인생 꽃'이라 할 만큼 넉넉하게 품어 준 해바라기 꽃밭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다시 찾은 함안의 기온은 추석이 지난 날씨임에도 타로의 바늘 끝 인 양 살갗을 따갑게 태웠다. 뙤약볕은 온 힘을 다해 남은 열기를 쏟아내며 여름의 막바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 함안 시내를 품고 피어난 꽃들 멀리 함안 시내가 보이고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안고 피어난 꽃들이 펼쳐져 있다.
ⓒ 박세원
비는 내리지 않은 채 뜨거운 태양 때문인지 내가 사는 고장 가까운 곳 함평 용천사와 고창 선운사의 꽃무릇 소식은 추석이 지나감에도 감감무소식이다. 앞으로도 일주일가량 더 기다려야 꽃을 볼 수 있다는 소식에 하루를 더 지체할 수 없어 120km가 넘는 거리를 무작정 달렸다.

상림공원에 도착해 제2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마주한 꽃밭은 넓게 펼쳐져 지루한 오후 시야를 시원하게 열어줬다. 구불길 사이로 보라색 버들마편초와 황색 코스모스, 베고니아 등 키 작은 노란 꽃들이 가을 단장을 한 파란 하늘과 장관을 품고 있었다.

상림공원은 면적 21ha로 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이곳 천령군의 태수로 머물렀던 시기에 조성됐다.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상림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 잡은 호안림이며 신라진성여왕 시절,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에 조성한 숲이라고 전한다.

숲으로 이뤄진 상림공원에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초록숲 속 꽃무릇이 빨갛게 단장을 한 채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상림경관 단지 내에는 물길을 따라 맨발 산책로를 다볕당 코스와 함화루 물레방아 코스 등 2개 코스를 조성 해 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심신의 치유를 위해 삼삼오오 맨발걷기를 하고 있었다.
▲ 치유가 되는 마사토 길을 맨발로 걷다 다양한 종의 나무들 사이로 열린 길 양 옆의 꽃들이 맨발걷기를 하는 시민들을 반겨주고 있다.
ⓒ 박세원
나도 덩달아 맨발로 몇 발자욱 걷자 발바닥을 자극할 만한 작은 마사토 분이 짜르르 간지르며 종아리의 핏줄을 타고 허리까지 시원하게 맛사지 해 준다. 숲 사잇길을 지나는 곳곳에 나무의자가 쉼터를 만들어 주어 숲속에서 쉬어갈 수 있다. 시냇물을 건너 갈 수 있도록 타원형 석물로 빚은 다리와 물 위에 놓여 진 돌다리 사이로 유년의 소녀 하나 물장구를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초록 소나무와 120여 종의 나무가 우거진 숲에 오만한 자태를 뽐내고 피어난 빨간 꽃무릇이 군락을 이루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곳 함안에 사는 사람들은 봄에는 연꽃과 팬지,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꽃무릇 까지 사철 꽃 속에 꽃에 취해, 행복에 취해 살고 있었다.
▲ 육교 위 시민들을 위한 쉼터 숲과 숲을 이어주고 바람과 햇빛을 머물게 하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육교 위로 꽃들이 지나간다.
ⓒ 박세원
▲ 아름다운 상림공원 꽃무릇이 수를 놓은 듯 빨간 자태를 뽐내고 물가운데 유년을 떠올리게 하는 길 손 하나 서있다.
ⓒ 박세원
꽃무릇을 촬영하는 내내 온 몸은 땀으로 젖어 들었지만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간다면, 그리운 님과 함께 맑은 물속에 비친 꽃무릇의 반영을 보면서 이 길을 걷고 싶다. 빨갛게 고백한 꽃무릇 앞에서 이해인 님의 시 상사화가 떠오른다.

돌아오는 길 추석 한가위를 보낸, 여전히 큰 보름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내일은 분명 시원하게 비가 내릴 것이라고. 비가 내린 뒤에는 한 뼘 쯤 더 자란 꿈과 함께 젖어 있을 그 꽃을 생각한다.

상사화/이해인

아직 한 번도 당신을 뵙진 못했군요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기다려 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릅니다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을
어긋나 보지 않는 이들은 잘 모릅니다

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술
내 분홍빛 애뜻한 사랑은
언제까지 홀로여야 할까요
▲ 차마 떠나지 못하는 보름달 꽃무릇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벌써 날이 저물어 갈길이 멀다. 추석 이틀뒤 아직도 꽉 차 있는 보름달이 구름에 싸여 우리 일행을 호위한다.
ⓒ 박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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