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차별' 다룬 日드라마…호평 받는 한국인 배우 [줌인도쿄]
일본 공영방송 NHK는 반세기 넘게 아침 드라마 시리즈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아사도라(朝ドラ)’로 불리면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지난 4월부터 방송 중인 아사도라 ‘토라니 쓰바사(虎に翼·호랑이에게 날개를)’도 크고작은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여성·인종차별 등에 맞서 싸우는 여성 법조인들의 얘기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처럼 일본에선 민감한 이슈도 과감히 다룹니다. 한국어도 종종 나오는데요. NHK의 간판 프로그램이 왜 이런 민감한 이슈를 다룬 것일까요? 지난 12일 도쿄 NHK 본부에서 드라마를 제작한 오사키 히로카즈(尾崎裕和·44) 수석 프로듀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헌법을 주제로 다룬다고?
드라마 제목인 ‘토라니 쓰바사’는 ‘강자에게 강한 힘이 더해진다’는 뜻입니다. 주인공이 법이란 막강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겁니다. 주인공의 실제 모델은 메이지(明治)대 여자부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1938년 일본 첫 여성 변호사가 된 미부치 요시코(三淵嘉子·1914~1984)입니다. 드라마지만 시대적 배경을 상세히 고찰하고 재현한 게 특징이죠.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일본 헌법 제14조, ‘법 아래 평등’입니다. 제14조는 ‘인종, 신념,성별,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차별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당시나 지금이나 현실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죠. 드라마가 여성차별, 인종차별, 동성애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평소 아사도라 시청자가 아니였던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주인공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한국인 배우 하연수입니다. 그가 맡은 배역은 최향숙(崔香淑)입니다. 최향숙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일본 유학을 떠나 주인공을 비롯한 일본인 학생들과 함께 법학을 공부합니다. 일본의 패전 후 서울에서 만난 일본인과 결혼해 일본인 시오미 교코(汐見香子)로 살아가는 길을 택하는데요.
하연수는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극 중에서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데다, 연기력도 뛰어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하연수가 드라마에 나오면 SNS에서 드라마속 애칭인 ‘향짱’이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죠. 오사키 프로듀서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실제 모델인 미부치에게 조선인 유학생 친구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는 것 같은데요. 극중 주요 인물로 최향숙이란 사람을 설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A : 드라마 대본을 만들기 전, 작가와 함께 미부치가 다니던 메이지대를 취재했습니다. 미부치 주변에 조선인 유학생이 없었던 것 같지만, 당시 재학생 중엔 조선·대만·중국·만주 등 동아시아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주인공과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친구들은 각자 복잡한 사연을 가지는 사람들인데, 그 중 한 명은 해외에 뿌리를 둔 사람을 넣고 싶었습니다.
Q : 그 중에서도 조선인 유학생을 선택한 이유는.
A : 한반도는 일본과 가장 가깝고, 오랜 역사가 있잖아요. 또 실제로 드라마에 외국인이 등장한다면 그 나라의 배우가 출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배우라면 적임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Q : 당시는 여성 유학생이 적었던 것 같은데요.
A : 네. 그런데 가족이 먼저 일본에 오면서 따라오는 여학생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최향숙의) 오빠가 유학 중이라고 설정했어요.
Q : 하연수가 등장하면 SNS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
A : 하연수는 한국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지만, 일본에선 처음 봤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연기를 잘하는 멋진 배우’란 호평을 받았죠. 또 최향숙은 ‘원어민 수준으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하연수도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고요.
드라마에서 최향숙은 1937년 도쿄에서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오빠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특별고등경찰(특공)에 끌려가게 됩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최향숙은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그 후 서울에서 만난 일본인 남성과 사랑에 빠졌는데,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에선 조선인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었기에 최향숙은 이름을 바꾸고 일본인으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와 지내던 어느날, 우연히 친구인 주인공을 재회합니다. 시오미 쿄코로 살아가던 최향숙은 주인공에게 “그(최향숙)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며 거리를 두지요. 달라진 친구의 모습에 고민하는 주인공. 주인공의 선배는 “이 나라에 뿌리내린 교코짱(최향숙)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 너에게 있냐? 없지?”라고 다그칩니다.
Q : 이런 스토리를 묘사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을텐데요. 시청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A : 대본은 (근대 한반도 여성사를 전공한) 최성희 오사카산업대 교수와 작가 그리고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후배와 함께 수시로 상의하며 만들었습니다.최 교수와 후배가 옛날 자료를 많이 조사해주고, 시대적 상황에 맞게 최향숙 국적을 어떻게 할까 하는 등 꼼꼼히 잘 검토해줬습니다.당시 한반도 출신 분들이 얼마나 힘든 처지였을지 조사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이 드라마는 헌법 제14조 ‘평등’을 내세운 것이기 때문에 외국인으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그대로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드라마에선 1952년으로 설정된 방화 사건도 나오는데, 한국 남성이 피의자로 구속됐습니다. 검찰의 증거 자료로 제출된 것은 한국어 편지였습니다. 재판관이 돼 이 사건을 맡고 있던 주인공은 일본어 번역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교코(최향숙)에게 편지를 보여주며 다시 번역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내가 몹시 속을 태운 탓에”라는 대목이 “내가 실내를 완전히 태운 탓”이란 뜻으로 오역됐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피의자는 무죄 선고를 받습니다.
판결에 앞서 유죄를 의심하는 젊은 재판관이 있었는데요. 선배 재판관은 그에게 간토대지진 얘기를 꺼냅니다. “그때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아 무고한 조선인이 많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세대”라고 지적하면서 근거없이 의심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민감한 주제까지 다뤘는데, 시청자들 반응은 어땠나요.
A : 간토대지진 얘기가 나왔을 땐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땐 한국, 조선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생각하는 회였기 때문에 조선인 학살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살은 차별 감정으로 인해 실제로 일어난 비극이고, 일본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사실입니다. 다만 논쟁을 일으키려는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과장하지도 않고, 당시 신문을 그대로 방송해 일반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대사에 담았습니다.
Q : 드라마에 한국어가 종종 나옵니다. 요즘 일본 방송에서 한국어가 나오는 장면이 많아졌는데, 양국 관계 개선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별로 상관없는것 같아요. 다만 한국의 엔터테인먼트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일본 제작자들은 한국 작품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일본과 한국은 굉장히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시청자들도 한국 배우가 연기하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고, 드라마 속에서 한국인을 그려내고 싶어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코(최향숙)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딸을 키우면서 이제 변호사가 됐습니다.일본에서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는 이 드라마는 오는 27일 마지막 회가 방송됩니다. 차별과 맞서온 '법 아래 평등'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 모두 행복한 길을 가길 기대합니다.
■ 매일 15분 이어지고 있는 아사도라
「 ‘연속 텔레비전 소설’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NHK의 아사도라는 1961년부터 무려 63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단편 드라마 시리즈입니다.1983년 방송된 ‘오신(おしん)’은 최고 시청률 62.9%로 일본 드라마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고, 전 세계 73개 국가에서도 방송됐습니다.
방송 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15분간으로, 6개월간 이어집니다. 중장년층 여성 시청자가 많다보니 제2차 세계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성을 그린 작품이 많습니다. 아사도라 주연을 맡은 배우는 인지도가 치솟기 때문에 ‘국민 배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
도쿄=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onuki.tomok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어령 "내가 암 투병 중이오"…그때 의사가 날린 돌직구 | 중앙일보
- 부하 58명과 성관계, 113억 뇌물…중국 '아름다운 당간부' 결국 | 중앙일보
- 경찰에 월 4000만원 상납…"싸가지 있는 놈" 룸살롱 황제 정체 | 중앙일보
- "눈 떠보니 유부남이 몸 위에"…강제추행 피해 폭로한 여성 BJ | 중앙일보
- 10년간 딸 성폭행한 패륜 아빠, 재판서 "근친상간 허용해야" 주장 | 중앙일보
- "아기집 5개, 매일 울었어요" 자연임신 '오둥이' 낳기로 결심한 이유 | 중앙일보
- "곽튜브 절도 의혹 모두 거짓, 죄송" 고개 숙인 폭로자 정체 | 중앙일보
- "연예인 아니에요? 자리 바꿔줘요"…노홍철 겪은 황당한 일 | 중앙일보
- 기내식 열었더니 '살아있는 쥐' 튀어나왔다…여객기 비상 착륙 | 중앙일보
- "기사마다 악플, 누군가 했더니"…박수홍 아내가 밝힌 악플러 정체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