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 폐부 찌른 앨범, 휴가 떠난 대통령 비난도

김태훈 2024. 9. 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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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다시 읽기] 그린 데이 < American Idiot >

[김태훈 기자]

시대적 위기는 때때로 예술의 각성제가 되곤 한다. 2004년의 미국은 조지 W. 부시의 시대였다. 이라크 전쟁으로 폭력적인 자유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이 끊이지 않은 동안, 소외 계층은 점점 늘어났다. 자극적인 미디어는 복잡한 사회로부터의 일시적인 탈출구가 되어주기도 했지만,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다. 부시 체제의 참모진들을 비롯한 수많은 고위 계층은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놓고 뒤에서 개인만의 이득을 챙기기 바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답답한 현실은 문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3인조 펑크 록 밴드 그린 데이는 묵묵히 본인들의 통산 일곱 번째 작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1994년 메이저 데뷔 앨범 < Dookie >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며 명성을 얻었으나, 이후로는 < Dookie >에 버금갈 만한 히트작을 발매하지 못한다는 평과 함께 하락세를 걷고 있었다. 그들은 관성적으로 늘 하던 음악과 비슷한 느낌의 곡들이 수록된 펑크 록 앨범 < Cigarrettes & Valentine >을 녹음했다.

모든 곡의 녹음을 마치고 후반 작업만 남겨놓았던 그때, 데모 테이프가 도난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낙심했으나 본인들이 빠진 음악적 매너리즘에 관한 고민이 있었던 밴드의 보컬 빌리 조 암스트롱은 < Cigarrettes & Valenttine >이 훌륭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이 기회에 더욱 혁신적인 새로운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린 데이의 멤버들이 기존과는 다른 음악적 방향성을 찾고자 애쓰며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미국은 다양한 고통 속에 신음하며 병들어가고 있었다. 마침 더 후의 < Quadrophenia >, 핑크 플로이드의 < The Wall > 등 록 오페라 형식의 명반들을 들으며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던 그들은 본인들이 살아가는 미국의 아픔을 포착하고, 펑크 록의 본질인 저항정신을 끌어 모아 당시 사회의 모습들을 음악에 녹여내기로 한다. 선거를 약 두 달 앞두고 있던 2004년 9월 21일, 그린 데이의 7집이자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록 오페라 앨범 < American Idiot >이 세상에 등장했다.

'멍청한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
 그린 데이 < American Idiot > 표지.
ⓒ 오션 웨이 레코딩 스튜디오 외
< American Idiot >은 '교외의 예수(Jesus of Suburbia)'라는 이름의 인물이 집을 떠나 험난한 여정을 하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 겪게 되는 사건들과 함께 사랑과 폭력이 뒤섞인 이야기들을 담았다. 등장인물들은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현대 사회에 내던져진 슬픔과 환멸로 일그러져 있다. 그 모습은 반항적이고 타락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지만,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면서도 최소한의 인간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그 모습은 애잔하고도 서글프다.

타이틀곡이자 오프닝 트랙 'American Idiot'은 매스미디어가 조종하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면서 '멍청한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라는 울부짖음을 담고 있다. 이는 앨범 전체의 주제의식을 관통한다. 다섯 개의 파트로 이루어진 러닝타임 9분대의 대곡 'Jesus of Suburbia'는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심리와 그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하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해당 트랙은 시공간적 배경과 인물 감정의 변화에 맞아떨어지는 곡 변주 구성과 완급 조절, 섬세한 가사가 어우러지며 완벽한 스토리텔링이 담긴 그린 데이의 명곡으로 자리 잡았다.

'Holiday'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폭력적이고도 불합리한 정책을 극렬하게 비판하는 곡으로, 이라크 전쟁에서 소모적으로 죽어가는 군인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사람들이 고통 받는 와중에도 휴가를 자주 떠나던 부시를 겨냥한다. 바로 이어지는 'Boulevard of Broken Dreams'는 빛나는 꿈들이 처참하게 부서지는 거리를 걸으며 고독감을 느끼는 내용으로, 서정적인 멜로디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빌보드 핫 100 차트 2위는 물론,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하며 그린 데이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했다.

타인과의 관계는 고독감을 잊게 해주지만, 동시에 또 다른 위험과 고통의 서막이 되기도 한다. 'St. Jimmy'에서 주인공은 위험하고 타락했으나 매력적인 인물 '성자 지미(St. Jimmy)'를 만나고, 마약을 구원의 물건처럼 받아들이면서 피폐해져 간다.

주인공은 본인의 망가진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여성과 조우하고 강렬한 사랑을 느끼지만, 곧 실연의 아픔에 빠지게 된다. 이에 성자 지미는 사실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의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걸어온 삶을 돌아본다. 서정적인 어쿠스틱 기타 리프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후렴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는 그 전환점이다.

해당 곡은 앨범 내에서 회상을 통해 주인공의 성장한 내면을 드러내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사실은 빌리 조 암스트롱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추모곡이기도 하며 동시에 9.11 테러의 안타까운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또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기점으로 국가적 재난이나 안타까운 사망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들려오는 추모의 노래로도 자리 잡게 되었다.

미국 사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

< American Idiot >은 그린 데이 음악의 비약적인 발전과 진보는 물론, 섬세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미국 사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까지 설득력 있게 담아낸 명반으로 평가받으면서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한 거대 히트작이 되었다. 해당 작품은 발매 이후, 빌보드 차트에 101주간 머물렀으며 올해의 앨범 노미네이트, 올해의 록 앨범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며 긴 침체기를 끝내고 성공적인 부활을 알렸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그린 데이의 인기를 두고 '지지율이 급락하는 부시 체제에서의 수혜자이자 선구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뮤지컬 업계 또한 앨범의 인기와 작품성을 주목했다. 앨범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수록곡들을 기반으로 제작된 마이클 마이어 감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 American Idiot >은 2009년에 초연되었으며 2010년 브로드웨이 입성 후 1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냈다. 2013년에는 국내에서도 내한 공연을 가진 바 있다.

그린 데이의 외침은 멈추지 않았다. 2009년작 < 21st Century Breakdown >은 더욱 넓어진 주제의식과 방대한 스토리텔링으로 전작 못지않게 큰 사랑을 받았다. 최근작 < Saviors >는 팬데믹과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겪으며 변화한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며 그들의 비판적인 시선이 건재함을 알림과 동시에 서정적인 면모와 펑크 록의 즐거움을 담아내 호평 받았다.

소수의 권력에 의해 다수의 개인이 피해를 보는 부조리한 사회상은 앨범 발매 20주년을 맞은 2024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에 따라 작품 안에 담긴 주제의식은 유효하다. 이에 따라 < American Idiot >은 분노와 분열을 유발하는 시대에서도 어떻게든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고자 노력하는 개인에게 통쾌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록의 교본이자 입문작, 그리고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반으로 언제나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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