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맥킨지 출신 ‘이 남자’…스킨천사로 창업 10년 만에 3000억 매각 눈앞 [신기방기 사업모델]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4. 9. 2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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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명동에 문을 연 스킨천사 플래그십스토어. (크레이버 제공)
매출액 562억원(2022) -> 955억원(2023) -> 3500억원(2024 예상).

한 중소기업이 2년 만에 순식간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그림이다. 실제 이 어려운 과정을 K뷰티 유통·브랜드 스타트업 ‘크레이버’가 거의 해내는 분위기다. 이미 올해 7월까지만 누적 매출액이 1700억원을 넘겼다. 통상 화장품은 블랙프라이데이 등 대형 세일이 있는 하반기 매출이 더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매출 목표를 좀더 높여잡아도 된다는 외부 시각도 있다. 수익성도 발군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흑자전환한 후 지난해에는 10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바 있다.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더 높을 가능성이 높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800억원 이상 된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

더 눈길 끄는 점은 이 회사가 약 3000억원대에 매각을 진행중이라는 사실이다. 인수주체는 ‘조선미녀’로 유명한 구다이글로벌. 올해에만 티르티르, 라카코스메틱을 잇따라 인수한 회사로 이번에 크레이버까지 인수하면 단숨에 연결 기준 매출액 8000억원 이상 대기업으로 등극할 수 있게 된다.

IB업계 관계자는 “구다이글로벌이 크레이버의 성장세를 보고 공격적으로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자기자금 외에 금융사를 앞세워 인수금융, 프로젝트펀드를 조성하고 있는데 프로젝트펀드의 경우 크레이버 성장성을 보고 출자하려는 업체가 줄을 서는 분위기”라고 사정을 전했다.

크레이버 누가 이끄나

이소형 크레이버 대표.
창업 10년 만에 3000억원대 매각을 앞둔 이들은 누굴까.

크레이버는 서울대·맥킨지 출신의 이소형, 연쇄창업가인 박현석, 미미박스 공동창업자였던 이재호 3명이 모여 2014년 창업한 회사다.

이소형 대표는 “한국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요소가 세련된 소비자, 외모관리에 개방적인 시장환경 속에서 화장품이 이런 한국의 강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매출로 전환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해 의기투합하게 됐다”라고 소개했다.

이런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창업 초기 중국에서 한국 화장품 붐이 불면서 해외 유통에 불이 붙었다. 다양한 K뷰티 브랜드를 발굴, 중국에 소개하면서 회사는 급성장했다. 지금으로 치면 상장사 ‘실리콘투’ 역할을 한 셈이다. 투자유치 금액만 당시 300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중국에서 한한령이 생기면서 양국 소비재 무역이 뚝 끊겼다. 그러자 K뷰티 브랜드가 고전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동남아 등 인근국가 진출로 대안을 마련하려 했지만 워낙 중국 비중이 높아 쉽게 대안이 되지 못했다. 결국 고배를 마시며 회사는 적자, 직원 중 일부는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19년 이후엔 코로나19가 창궐했다. 2021년 영업적자는 100억원대에 달했다.

흑자 전환 이끈 극적 반전 주역은?

캐나다 출신 직원의 내부 제안으로 개발, 히트상품이 된 스킨천사 히알루-시카 워터핏 선 세럼. (크레이버 제공)
한한령, 코로나19 등 위기는 매서웠다. 그런데 이때 사업 모델을 바꾼 것이 지금의 크레이버 반전스토리 서막이 됐다.

이소형 대표는 “처음엔 유통 플랫폼을 지향했는데 외부 위기가 닥쳤을 때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래서 이후 잠재력 있는 브랜드를 직접 인수해 키우고 종전 해외유통망에 적극 태우는 브랜드 에그리게이터(인수 후 육성) 전략을 병행했더니 실적에 반전이 왔다”라고 소개했다. 올해 메가브랜드(매출액 1000억원 이상) 등극이 확실시되는 스킨천사도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인수된 브랜드다. 이밖에도 이데넬·띰·좀비뷰티·커먼랩스 등 크레이버가 운영하는 브랜드는 총 5개다. 이들은 골고루 매출이 늘어나면서 크레이버 성장의 든든한 축이 되고 있다. 그밖에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소형 대표와 직접 대화를 나눠봤다.

Q. 무엇보다 회사 성장세가 뚜렷한데 매각을 추진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올해 예상 영업이익 등 실적만 놓고 보면 기업가치는 1조원을 넘길 수 있다는 외부 시각도 있는데.

아직 완전히 딜클로징(잔금납부)이 된 것이 아니라 얘기하긴 조심스럽다. 하지만 매각 의사는 확고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약 3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대다수의 투자사가 펀드 형태라 만기가 도래했다. 이들은 자본회수(엑시트)를 원하기에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지금까지 회사를 운영해온 가장 큰 이유는 경영진을 믿어준 투자자, 스톡옵션을 보유한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지금 매각 거론되는 기업가치만으로도 그동안 기다려준 투자사 등 이해관계자에게 어느 정도 보답할 수 있는 단계에 왔다고 생각한다. 10년 동안 짊어지고 있던 책임감의 무게를 내려놓으려고 결정했다.

Q. 지금 거론되는 기업가치도 대단한데 결정적으로 어떤 비결이 작동했다고 보나.

위기에서 많이 배웠다. 특히 중국 전문 유통사로 특화하려 했던 점이 패착이었다. 대외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 이후 ‘고른 성장’을 꾀했다. 특정 국가의 성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동남아, 중국, 일본, 유럽 등 모든 지역에서 성장하는 몇 안 되는 브랜드를 만들자고 했는데 스킨천사가 그 모범생이 돼 줬다. 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른 브랜드도 이 공식을 따르게 하니 성장세가 뚜렷해졌다.

Q. 한때는 회사가 적자 상황이 인력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조직 안정시키기가 만만치 않았을 듯 싶다. 어떻게 극복했나.

어려울 때일수록 회사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했던 것이 컸다. 지금 회사에 현금이 얼마나 있고, 지금 이 추세면 언제쯤 소진되는지까지 모두 공유했다. 얼마 남지 않은 회사 자원이 공개되니 남은 직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전 직원이 우선 집중해야할 사안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이런 과정에서 내부 소통 역시 원활해졌다.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회사 방향성에 맞는 제안을 할 수 있게 됐다. 실제 스킨천사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선세럼은 캐나다 유학 경험이 있는 직원이 북미의 백탁이 심한 선크림 대비 한국 선크림이 경쟁우위를 가진다며 적극적으로 어필해 출시하게 됐다. 더불어 투명한 보상 시스템도 구축했다. 회사 이익이 나면 철저히 공개하고 이익 일부는 나눴다. 또 추가 스톡옵션을 부여하면서 다양한 성공 공유 문화를 확보했다. 그덕에 업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Q. K뷰티 2차 전성기가 왔다는 얘기가 많다. 동의하나?

그렇다. 실제 트랜드에 민감하고, 섬세한 소비자 덕분에 K뷰티 브랜드는 경쟁이 심하다 해도 저마다 강점, 차별점을 확실히 보이는 브랜드가 많다. 그덕에 스마트하고 감성 있는 창업자도 많이 생기고 있다. 또 트렌드에 밝은 해외 고객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 취향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곳도 K뷰티이기에 향후 전망은 밝다.

Q. 현장에 있으면서 뷰티 산업에서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K뷰티가 잘 된다고 하니 전략 없이 ‘미투(무작정 따라하기)’ 제품만 대거 양산한다든지 브랜드를 키우려 하기보다는 치고빠지는 장사를 하고자 하는 경영자도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더불어 미중 갈등 등으로 촉발된 보호 무역 기조가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화장품에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늘 유의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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