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 “유자왕의 의상과 구두만 봐선 안돼요”
최근 내한하는 해외 악단의 흥행은 지휘자 정명훈 아니면 협연자로 피아니스트 조성진 또는 임윤찬에게 달려있다는 말이 나온다. 협소한 국내 클래식 공연 시장 탓에 세 아티스트의 티켓 파워에 기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가을 내한 악단 가운데 10월 1일 세종문화회관, 3일 롯데콘서트홀, 4일 남한산성아트홀, 5일 대전예술의전당을 찾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는 세 한국 아티스트가 없어도 클래식 팬들에겐 놓치기 아깝다. 영국을 대표하는 명문 악단인 데다 거장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 중국 출신 피아니스트 유자왕이 협연에 나서기 때문이다. 유자왕은 랑랑과 함께 중국이 낳은 양대 클래식 슈퍼스타다. 특히 보수적인 클래식계에서 뛰어난 기량과 함께 몸매를 드러내는 초미니스커트와 10㎝ 넘는 킬힐 등 파격적인 패션을 자랑한다.
내한공연을 앞두고 파파노는 서면 인터뷰에서 “유자왕은 현재 최고의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자주 작업했다. 화려한 의상과 구두로 유명하지만, 외적인 모습으로만 유자왕을 봐서는 안 된다. 유자왕은 음악에 헌신적이면서 철저히 준비하는 아티스트”라면서 “유자왕은 호기심이 많아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시도한다. 안전한 길 대신 자신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점에서 존경스럽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탈리아계 영국 지휘자 파파노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21살 때 미국 뉴욕시티오페라의 리허설 반주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조수로 6년간 활동하는 등 오페라와 오케스트라를 현장에서 배웠다. 27세의 나이에 노르웨이 국립오페라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그는 3년 뒤 이곳의 음악감독이 됐다. 이후 1992~2002년 벨기에 브뤼셀 왕립극장 음악감독과 2005~2023년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영국 문화예술의 상징과도 같은 로열오페라하우스의 음악감독으로 지난 2002년 임명된 이후 22년 만인 지난 6월 물러났다. 그리고 지난 9월 LSO 상임지휘자로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이미 LSO의 객원 지휘자로 70회 이상 무대에 선 데다 여러 차례 음반까지 냈을 정도로 친밀하다.
LSO에서 파파노의 전임 상임지휘자는 베를린필 음악감독을 역임한 거장 사이먼 래틀이다. 래틀은 2017-2018시즌부터 2023-2024시즌까지 6년간 활동했다. 지난 2015년 LSO는 래틀을 임명하면서 전용 콘서트홀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못했다. 여기에 브렉시트와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지면서 래틀은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전용 콘서트홀 건립 여부에 대한 질문에 파파노는 답변하지 않았다. 대신 로열오페라하우스에 이어 LSO를 이끌게 된 보람과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는 “오랜 세월 오페라 지휘자로 일한 것이 내 음악적 접근 방식에 큰 영향을 줬다. 항상 음악 속에서 극적 요소를 찾으려 한다. 이야기는 음악을 좀 더 친숙하게 만드는 창구가 된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반드시 구체적일 필요는 없다. 오롯이 관객의 상상에 맡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현악만이 올라가는 공연은 관객에게 훨씬 더 순수한 경험이다. 오로지 음악만 존재하는 무대에서 지휘자로서 어떻게 이 음악을 전달할지 고민하게 된다”면서 “지휘자로서 오페라와 관현악을 둘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조성진, 임윤찬 등 한국 아티스트들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조성진과 지난 2018년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임윤찬과 지난 7월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각각 협연한 바 있다. 그는 한국 클래식계의 ‘아이돌’인 두 피아니스트에 대해 “엄청나게 재능있는 피아니스트들”이라면서 “단순히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부분까지 완벽히 이해하고 연주하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한편 아시아 투어의 일환인 이반 내한 공연은 콘서트홀마다 다른 3개의 프로그램으로 이뤄져 있다. 1일 세종문화회관에선 시마노프스키의 콘서트 서곡,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이 연주된다. 3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생상스의 교향곡 3번 ‘오르간’이 연주된다. 그리고 4일 남한산성아트홀과 5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말러의 교향곡 1번이 연주된다.
최근 대형 오케스트라의 투어가 단체의 수입에 큰 역할을 하지만 탄소배출이 워낙 많다는 비판도 나온다. 영국의 환경 관련 비영리단체 ‘줄리의 자전거’에 따르면 대형 오케스트라의 1년치 탄소배출량의 절반이 해외 투어 10회에서 비롯된다. 이에 대해 파파노 역시 LSO도 지속가능한 투어를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기후 변화 문제를 고려할 때 지속 가능한 투어는 LSO의 중요한 문제인 만큼 많은 논의를 한다. 우리가 시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한 도시에서 최소한 두 번, 가능하면 세 번의 공연을 다른 프로그램으로 진행함으로써 관객을 끌어들이고 기획자들도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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