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 외치며 환호…고구려 무용총 그 장면, 카자흐에서 보다 [글로벌리포트]

박형수 2024. 9.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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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테즈, 테즈(빨리, 빨리)!” " 지난 12일(현지시간) 오전 10시, 제5회 세계유목민경기대회(World Nomad Game, WNG)가 진행 중인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의 콕파르(Kokpar) 경기장. WNG의 경기 종목 중 가장 격렬하고 인기가 높은 콕파르의 결승전에서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이 맞붙었다. 전통의 강호이자 라이벌인 양국 대표팀의 경기는 동점이 반복되는 접전이었고, 흥분한 선수들이 캄차(채찍)로 상대편을 때리는 심각한 반칙 상황도 터졌다. 연장전 끝에 카자흐스탄이 승리하자 카자흐 응원단은 커다란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5회 세계 유목민 게임에서 선수들이 염소의 사체 모양으로 만든 고무 인형 '세르케'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대초원 생존 위한 기술과 체력 경쟁


지난 8~14일 '유목민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WNG의 취재를 위해 중앙아시아 최대 국가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이번 대회는 전 세계 89개국에서 30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한국에선 전통 활쏘기, 벨트 레슬링(씨름과 비슷한 전통 무술), 지적 전략 게임 등에 40여 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WNG의 종목은 유목민이 대초원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기술과 체력을 겨루는 데 집중됐다. 특히 황금독수리·매 등 맹금류와 말이 전면에 등장하고, 대다수 겨루기 종목에선 맨몸과 근육만으로 육탄전을 벌여 이색적이다.

지난 13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세계 유목민 게임(World Nomad Games)에서 맹금류를 이용한 사냥 종목에 출전한 선수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최고의 인기 종목은 격렬하고 거친 플레이 때문에 ‘말을 탄 럭비’로 불리는 콕파드다. 10명의 말을 탄 기수로 구성된 두 팀이 고무로 만든 염소 사체 모양의 33㎏짜리 ‘세르케’를 차지한 뒤 전속력으로 달려 상대팀 골대 안으로 던져 넣으면 점수를 얻는다.

기수들은 세르케를 뺏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데, 이 상황이 매우 거칠어 경기 중 놀란 말이 선수를 태운채 거친 숨을 뿜으며 경기장 밖으로 이탈하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콕파르의 전통 강호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러시아, 튀르키예 등이다. 미국에서도 카우보이 출신 로데오 선수들이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기마 활쏘기와 승마 레슬링도 흥미롭다. 기마 활쏘기는 초당 10~20m 속도로 달리는 말 위에서 궁수가 세 개의 과녁에 화살을 꽂아야 한다. 경기 때마다 과녁이 바뀌는 데, 헝가리·튀르키예·한국·카자흐스탄 스타일 과녁이 등장한다.

8일과 11일 기자가 두차례 관람한 기마 활쏘기는 관중들로부터 “신기(神技)에 가깝다”는 감탄을 자아냈다. 선수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고삐를 놓고 선채로 상체를 뒤로 돌려 화살을 조준하고 활을 쏘는데,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세계기마활쏘기연맹 심판인 아말리 라슈케는 유로뉴스에 “말이 달리는 속도,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가 매번 다르다. 기마활쏘기 선수의 뇌는 매번 2000가지 연산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제5회 월드노마드게임에서 기마활쏘기에 출전한 선수들. WNG 본부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수렵도. 사진 문화재청


승마 레슬링은 직경 15m의 원형 모래 경기장에서 말을 탄 두 명의 선수가 상대방을 먼저 말에서 떨어뜨리면 승리하는 방식이다. 또 훈련시킨 황금독수리나 매를 날려 미끼를 찾기까지의 시간을 재 승부를 겨루는 쿠스베길릭, 맨손으로 200㎏의 수레를 끄는 파워풀 노마드도 인기였다.

제5회 월드노마드대회에서 맨손과 근육으로 200kg의 수레를 끄는 '파워풀 노마드' 종목에 출전한 선수의 모습. 박형수 기자

한국 활쏘기 선수 향해 "고주몽" 환호


전통 활쏘기는 출전 선수들이 각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경기를 치른다. 한국 선수들은 초록색 두루마기 형태의 한복인 소창의를 맞춰 입고 출전했는데, 외국 선수단은 물론 카자흐스탄 대학생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한국 선수단에 기념사진을 요청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박민정(38) 선수는 “드라마 ‘주몽’(MBC·2006년작)의 영향인지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한국 선수들을 향해 ‘고주몽’이라며 박수쳐주니 고맙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몽은 카자흐스탄에서 지난 2008~2009년 방영돼 한국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인 80%를 기록한 바 있다.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5회 월드노마드게임의 전통 활쏘기 종목 출전 선수들. 왼쪽에서 세번째가 한국 선수. 박형수 기자

규모 동계올림픽 맞먹어…북미 개최도 논의


이번 WNG은 주최국 카자흐스탄이 1위(금 43, 은 32, 동 37)를 차지했다. 2위 키르기스스탄, 3위 러시아, 4위 우즈베키스탄 순이다. 한국은 메달 획득엔 실패했다. 중앙아시아 국가와 러시아를 필두로, 튀르키예·헝가리 등 유목민 전통이 있는 일부 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휩쓸면서, 아직까진 ‘이들끼리의 대회’라는 인식이 강하다.
정근영 디자이너

하지만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된 이번 대회는 참가국과 선수단 규모면에서 동계올림픽(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91개국, 2897명 참가)에 맞먹는 수준으로 덩치를 키웠다. 또 서유럽 국가인 이탈리아가 WNG 출전 사상 첫 금메달을 땄고, 폴란드·프랑스·호주·인도·중국 등도 메달 획득에 성공하면서 WNG 대중화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비슷한 성격의 대회로 꼽히는 스코틀랜드 전통축제 하일랜드 게임, 몽골의 나담 축제에 비해 WNG는 이미 글로벌한 대회의 형식과 규모를 갖췄다는 평가다.
제5회 월드노마드게임 개막식에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WNG 대회본부
제5회 월드노마드게임 개막식에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박형수 기자

카자흐스탄 관광·스포츠 부장관인 자라스바예프 에릭 마라토비치는 “2030년이나 2032년 대회는 (미국·캐나다 등) 북미에서 WNG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대회의 지리적 영역이 확장돼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세계적 프로젝트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6회 개최지는 키르기스스탄이다.

카자흐스탄은 이번 대회를 자국 관광산업 부흥 계기로 삼겠다는 목표로 준비했다. 카자흐스탄은 국내총생산(GDP)에서 관광업 비중이 1% 미만에 그친다. 이번 WNG의 경기장이 자리한 에스노아울 빌리지엔 각종 전통 스포츠 체험은 물론, 춤과 악기 연주 등 공연이 이어졌고 카자흐스탄 수공예품 전시 등 문화 행사가 100건 이상 진행됐다. 카자흐스탄 카진폼통신에 따르면, 이달 1~13일 카자흐스탄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59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WNG 본부는 이번 대회 관람객이 최대 25만 명으로 추산했다.

☞월드노마드게임=2014년 키르기스스탄의 콜폰아타에서 창설됐다.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당시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화 시대에 이 지역 문화를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한 뒤 만들어졌다. 2년에 한 번 개최된다.

박경민 기자

아스타나(카자흐스탄)=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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