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는 하지만 은행이 알아서” 오락가락 대출 정책 [취재수첩]
“송구하고 죄송하다.”
추석 전,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시중은행을 향해 연신 고삐를 죄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끝내 머리 숙여 사과한 일이 있었다. 이 원장은 정제되지 못한 가계대출 발언으로 국민에게 불편함을 초래했다며 연신 사과했다. 그는 금감원장의 말 한마디에 은행권이 대출 금리를 줄인상했고, 실수요자 피해가 생기는 등 시장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기존 집을 세주고 자녀 학교 근처로 이사하려던 가족, 첫 아파트 전세를 계약한 사회초년생 등 돌연 대출이 막힌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민심이 바닥을 드러내던 참이었다.
다만 이 원장의 사과로 시장 혼란이 금세 사그라들지는 미지수다. 이 원장이 사과하면서도, 가계대출은 은행권이 ‘자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했기 때문. 강력한 개입 의지를 드러낸 당초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고, 대출 관리와 실수요자 보호 책임을 은행권에 떠넘긴 모습이다.
갈팡질팡하는 금융당국과 은행 사이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 몫이다. 금융당국 눈치를 보며 두 달여간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대출 문턱을 높이던 은행들은 이제 저마다 실수요자를 위한 예외 규정을 쏟아내고 있다. 같은 조건으로도 어떤 은행에서는 대출이 가능하고,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 속출하다 보니 이제는 소비자가 은행의 조건을 일일이 공부하고 그마저도 은행에서 재차 확답을 받아야 대출받을 수 있게 됐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대출받는 꿀팁’을 주제로 유료 강의가 성업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진다.
정부, 은행 어느 쪽도 속 시원히 답을 안 해주는데 강의라도 찾아 듣겠다는 실수요자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시장을 흔들어놓고 뒤늦게 사과하면 금융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무색해진다. 이제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정책은 정교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대출 절벽에 몰린 서민은 시간이 별로 없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7호 (2024.09.25~2024.10.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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