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내연남과 ‘총격전’ 벌인 사내의 정체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
사내는 손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의 이름 앞으로 도착한 익명의 서신 때문이다. ‘바람난 여자’의 남편들이 모인 기사단 간부로 임명한다는 명백한 조롱.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부인을 난잡한 사람으로 음해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처지를 비아냥댄 편지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발신인은 누구인지, 어떤 의도로 보냈는지. 문득 한 사내의 얼굴이 스쳤다. 얼마 전 처제와 결혼한 그놈. 외설스러운 농담을 아내에게 던지던 불한당. 불쾌한 신체 접촉까지 서슴지 않던 파렴치한 인물. 가족 간의 지켜야 할 예의를 전혀 모르는 그놈을 떠올리며 사내는 생각했다. “그놈이 이 편지를 보냈을 거야.”
두 달 뒤, 스산한 공터에서 두 남자가 서로에게 총을 겨눴다. ‘탕탕’. 총성이 울리고 사내는 죽음을 맞이했다. 1837년 러시아 사교계를 뒤흔든 총격전이었다. 쓰러진 남자의 이름은 알렉산데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프거나 노여워 말라’는 글귀로 유명한 시인이었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푸시킨은 한 발의 총성에 쓰러져갔다. ‘러시아의 영혼’이라고 불린 사내의 마지막은 그의 문학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외증조부가 흑인…서민의 삶에 관심
푸시킨의 초상화를 본 사람들은 약간의 의문을 갖게 된다. 그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 그의 외증조할아버지는 흑인이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황족으로 살다 오스만 제국 노예무역으로 납치된 아브람 간니발이다. 그는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눈에 띄어 장군까지 지내면서 러시아 귀족 사회의 일원으로 살 수 있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그의 첫 부인은 그 몰래 바람을 피우고 사생아까지 낳을 정도였다.
외증손자인 푸시킨 역시 러시아 귀족이면서도 동시에 ‘검둥이’라는 모멸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자랐다. 훗날 귀족 뒤보르지나는 푸시킨을 “아프리카 족장”이라 부르기도 했다. 삶은 날 때부터 푸시킨을 속이고 속여왔던 셈이다. 유모와 하인은 그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나 다름없었다. 그 덕분인지, 그의 마음속에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 꽃피우고 있었다. 그가 작품 속에서 소박한 민중의 언어를 자주 구사한 배경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예브게니 오네긴’의 한 대목을 보자.
“나의 욕망은 평화와, 양배추국 한 사발, 그것도 큰 것으로.”
1812년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 푸시킨은 당대 유럽을 휩쓴 프랑스 문학을 탐닉하면서 자유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몸속에 체화해나갔다. 라 로슈푸코, 볼테르, 장 라신 같은 문호들의 글을 읽고 또 읽어나갔다. ‘나폴레옹 전쟁’이 푸시킨에게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프랑스 문학을 향한 존중을 동시에 심어준 셈이다. 푸시킨은 프랑스 문학의 화려한 문체와 서사 구조를 소화해 러시아 색깔을 입혔다. 전쟁은 많은 걸 파괴하고, 또 동시에 창조한다.
반체제 사상으로 유배당한 푸시킨
남부 러시아 추방 후 오히려 ‘걸작’ 써내려
그의 시는 유려하되 불온했다. 다음은 ‘자유의 송가’라는 시의 한 대목이다.
“왕좌는 자연이 아닌 율법이 주는 것. 당신(왕)은 사람들 위에 있지만, 그 위로 영원한 법이 서 있다.”
군주의 자의적 통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엿보이는 문장이다. 푸시킨은 러시아 제국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모임 ‘데카브리스트’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하고는 했다. 그의 주변에 있던 유모, 하인, 농부의 삶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러시아 황실은 푸시킨을 추방한다. 시베리아형이 유력했지만 그가 반체제 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것이 참작되면서 모스크바 남부 베사라비아 지역으로 추방이 결정된다. 러시아를 사랑한 애국자면서 동시에 권력을 불안하게 만드는 자. 푸시킨은 그렇게 ‘남방 유배기’를 시작한다. 권력은 그에게 벌을 주고자 했지만, 오히려 문인으로서 문학적 토양은 더욱 비옥해져갔다. 푸시킨은 그곳에서 ‘코카서스 포로’ ‘남부 시 시리즈’ 등을 완성했다. 가장 유명한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쓴 것도 이곳에서다. 잘생기고 재능이 있지만, 세상에 냉소적이고 진지한 것을 싫어하는 귀족 청년 오네긴의 이야기. 진지한 사랑을 거부하다 결국 아무것에도 정착을 못하는 ‘잉여인간’의 전형을 그려냈다. 유럽의 향락을 좇다 러시아적 가치를 잃어버린 귀족을 에둘러 비판한 작품이었다. 문학의 도덕적 역할을 강조하는 러시아 문학의 대표적 특징이 이때부터 자리를 잡았다. 푸시킨이 러시아의 영혼이라고 불린 배경이다. 그의 몸은 남부 크림반도에 머물렀지만, 그의 명성은 이제 전 러시아의 것이 됐다.
처제와 결혼한 남자와 총격전서 사망
권태로운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의 눈에 확 들어오는 여성이 있었다. 16살 소녀 나탈리아 곤차로바다. 큰 키와 화사하고 아름다운 얼굴, 발랄한 성격으로 매력을 뽐내는 여성이었다. 166㎝에 불과한 푸시킨은 자신보다 8㎝나 큰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30살이 다 돼가는 노총각 푸시킨은 당당하게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발랄한 소녀와 진지한 문인의 조합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그녀는 사교계에서 만난 남성들과 대화를 즐기면서 겉돌았다. 그녀의 가벼움을 알아채고 등장한 남자가 프랑스 출신 기사 조르주 단테스였다. 타고난 바람둥이인 그가 그녀의 헤픈 성격을 알고 유혹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탈리아의 여동생 예카테리나에게 청혼하고 허락을 받았다. 러시아 사교계에서는 “단테스가 나탈리아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 이를 은폐하기 위해 그녀의 여동생과 위장결혼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푸시킨의 속은 곪을 대로 곪아가고 있었다. 작품이 검열에 묶여 있어 가세가 기울고 있는 와중에, 아내의 외도 소문이라니. 심지어 동서 지간이 돼버린 단테스 그놈과 구설수다. 때마침 도착한 서신에는 “바람난 여인들의 기사단 간부”라는 조롱성 문구가 쓰여 있었다. 푸시킨은 이 편지를 단테스가 보낸 것으로 여겼다. 인내심이 한계에 부딪혔다. 기사의 정신으로 그에게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한다. 1837년 1월 27일. 두 발의 총성이 울린 뒤쓰러진 건 푸시킨이었다. 단테스는 팔에 가벼운 상처만을 입었다. 푸시킨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모든 증오를 내려놨다. 병상 옆에서 울고 있는 아내 나탈리아에게 그는 조용히 읊조렸다.
“당신이 결백함을, 제 온 마음을 다해 믿습니다.”
하인을 시켜 단테스에게도 편지를 보내 그의 행동을 용서하겠다고 전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프거나 노여워 않았던 사내. 러시아의 영혼이라 불린 그는 순수함만을 간직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의 전범이었다. 후대 글쟁이들은 모두 그의 글과 서사를 곱씹었다. 그가 없었다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도 없었을 것이다. 1880년 6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푸시킨 탄생 80주년 기념 동상 제막식’ 연단에 오른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의 동포가 된다는 것. 이를 증명한 사람이 푸시킨이었습니다. 그는 예언자였고, 어두운 밤길의 환한 등불이었습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7호 (2024.09.25~2024.10.01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엑시노스 2500 탑재 불발? 갤럭시 S25 가격 더 오르나 - 매일경제
- 자기만의 세상?…금투세, 개미에 혜택이라는 진성준 - 매일경제
- ‘박봉에 줄퇴사’...20·30 공무원들 “그만두겠습니다” [국회 방청석] - 매일경제
- 경기북부 ‘제2외곽순환도로’ 거의 다됐다…김포∼파주 구간은 내년 개통 예정 - 매일경제
- 서울대·맥킨지 출신 ‘이 남자’…스킨천사로 창업 10년 만에 3000억 매각 눈앞 [신기방기 사업모
- “인도까지 왜 갔나”...삼성전자, 인도 ‘강성노조’골머리 - 매일경제
- “자기야, 이러다 5억도 못 받겠어”...집주인들 속탄다 [김경민의 부동산NOW] - 매일경제
- [뉴욕증시] 미국증시 또 주요지수 일제히 상승...경기 연착륙 자신감 - 매일경제
- 10대 소녀들인데...뉴진스 ‘성상품화’ 논란 예측 못했나요 - 매일경제
- 청소년 SNS 이용 한도 설정...‘SNS판 셧다운제’ 나왔다 [국회 방청석]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