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호남 쟁탈전…혁신당 '광폭행보'에 민주당 '견제구'
서왕진 "민주당 텃밭 넘나들지 말란 영역 선언이냐"
조국, 현장서 사활 거는데…이재명은 주3회 재판 중
李, 23일 영광군 찾아 현장최고위…24일 곡성 방문
우당(友黨)의 모양새였던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이에서 내달 16일 전남 영광·곡성군수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신경전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민주당 독점' 상태인 호남에서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혁신당에 민주당이 '집안싸움'을 걸고 있다고 비난했다. 당대표가 선두에 나선 혁신당과, 소속 의원 일부가 참전한 민주당의 대결에 호남 민심의 향배가 주목된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혁신당의 호남 광폭 행보에 견제 수위를 올리고 있다.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된 주철현 민주당 전남도당위원장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조국 대표가 본인의 고향인 부산은 내팽개치고 엉뚱하게 민주당의 본산인 전남에서 스스로 '큰 집'이라고 칭했던 민주당을 상대로 집안 싸움을 주도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조국 대표는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쇄빙선'을 자임했던 초심을 되돌아보라. 지금은 진보 진영이 똘똘 뭉쳐 외연을 확장하고 윤석열 독재 정권의 폭주를 막는 데 집중할 때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이 모인 온라인 카페 '재명이네 마을'에서도 혁신당을 향해 "쇄빙선이라더니 해적선이 돼서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는 비난이 쇄도 중이다.
호남 유권자들께 민주당이 아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호남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혁신당의 외침에 '수중의 공깃돌'이었던 호남 민심이 동요하자, 민주당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 최고위원의 비난에 혁신당도 즉각 응수했다. 이규원 대변인은 주 최고위원의 발언 직후 논평을 통해 "'호남에선 민주당이 기득권이자 1당 독점 정당'이라는 게 사실과 무엇이 다르냐"며 "선거 끝나고 다시는 안 볼 사이처럼 굴지 말자. 민주당 지도부의 비난을 혁신당이 재보궐선거에서 잘하고 있다는 좋은 뜻으로 새기겠다"고 받아넘겼다.
서왕진 혁신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호남에서는 민주당 이외의 당이 후보를 내면 분열이고 집안싸움이냐"라며 "민주당 최고위원까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민주당 내에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상당한 것 같은데 누가 민주당에 이런 초헌법적 판정 권한을 부여했냐. 호남은 민주당의 텃밭이니 타당은 함부로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는 영역 선언으로 들린다"고 일갈했다.
이 와중에 민주당 지도부 일각에서 서울 여의도는 '중앙'으로, 호남은 '지방'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여과 없이 드러내 논란을 빚고 있다. 김민석 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이 전날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참석과 지역일정으로 본회의에 불참한 조 대표를 겨냥해 '쇄빙선 내려서 동네 선거하나, 부끄럽다 지방의원이냐'라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작성하는 모습이 보도됐다.
호남 유권자의 관심도가 집중된 10·16 재선거를 '동네 선거'로, 호남 재선거에 사활을 거는 조 대표를 '지방의원'으로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태우정부 시절에 지방자치 실시를 걸고 단식을 벌였는데, 중앙정치만 무겁게 보고 지방자치는 조롱하는 '오만한 시선'은 'DJ 정신'과도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규원 혁신당 대변인은 "두 명의 군수를 뽑는 선거를 '동네 선거'로 폄하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혁신당 의원들에 대해 '지방의원이냐'는 표현까지 쓰셨는데, 이는 김 전 대통령이 목숨을 건 단식투쟁 끝에 쟁취해낸 지방자치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며 "조만간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최고위원들도 호남 선거 현장으로 최고위원회의를 하러 가는데, 그 분들이 모두 '지방의원' 하려고 국회의원이 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꼬집었다.
진보 진영에서의 유례 없는 호남 경쟁에 지역민들의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다. 혁신당은 추석 연휴 직전 실시된 지역 언론 여론조사에서 영광군에 우위를 점한 반면, 곡성군에서는 열세를 보였다. 혁신당 입장에서는 두 곳 중 한 곳에서만 승리하더라도 정치적 입지가 대폭 확대된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영광은 민주당의 텃밭이기도 하지만 무소속 단체장을 세 차례나 배출한 곳인 만큼, 이번 재선거는 해볼만 하다는 게 혁신당의 속내다.
혁신당은 최종적으로 곡성군까지 뒤집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혁신당 핵심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처음에 혁신당이 호남에 후보를 내는 것에 대해 '과연 되겠어?' 혹은 '우리 땅(민주당 텃밭)인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뜻밖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니까 '잘못하다 혁신당에 내주겠네' 그래서 비상이 걸린, 즉 위기감의 발로"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영광군은 이전에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민주당이어야 한다'는 게 없지만, 곡성군은 민주당이 우세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혁신당은 여론조사 등 결과에 반색하지 않고, 곡성 결과에 울상 짓지 않는다. 곡성도 혁신당이 민주당을 뒤집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소속 의원들은 영광군과 곡성군에 달방을 얻어 직접 거주하면서 지역민과 스킨십을 확대하고 있다. 혁신당에 따르면 조 대표는 추석 5박 6일 연휴기간 동안 5000㎞를 이동하며 민심을 청취했다. 지역 현장 최고위원회의도 수시로 개최하며 호남 발전상을 설파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청래·박지원 의원 등이 한 달 살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경우 주 3회 재판 등 일정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박균택 민주당 의원은 KBS라디오에서 진행자가 '조 대표는 호남살이에 나섰지만 이 대표는 선거와 관련해 별다른 발언이 없다'고 하자 "주 3회 정도 재판 받고 여러 당무 행사를 하다 보니 지방에 갈 시간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오는 23일과 24일 영광과 곡성을 방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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