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톡]인텔 파운드리 분사로 본 삼성의 딜레마
IPO나 추가 투자 유치 등 선택할 듯
전 세계 유일 IDM된 삼성전자
인텔 분사 성공 시, 삼성 전략 변화할 수도
창사 56년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분사하기로 결정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반도체 패권을 되찾기 위한 핵심 사업으로 파운드리를 낙점했으나, 막대한 투자 비용과 기술 격차에 발목이 잡히자 위기 타개를 위한 묘수를 꺼낸 것이다. 인텔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한 의문이 남는다. 다만, 인텔 파운드리 사업 변화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독립성 확보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파운드리를 분사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삼성전자도 이번 인텔의 결정을 주의 깊게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유일한 종합반도체기업(IDM)이 된 삼성전자가 복잡다단해진 반도체 업계에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을지 좀 더 깊은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최근 파운드리 사업을 분리해 독립 자회사로 만드는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일각에선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매각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으나 분사하기로 정리한 것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두 사업부 간 분리를 확대하면 제조 부문이 독립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독립성에 대한 고객의 우려를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겔싱어 CEO는 지난 2021년 수장에 오른 뒤 파운드리 사업의 본격 재진출을 선언하며 2년간 250억달러(약 33조원)를 투자했다. 1~2나노(㎚·1㎚=10억분의 1m)대 초미세 공정에 업계 1위 TSMC, 2위 삼성전자보다 빨리 도달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며 투자금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러나 선두 업체의 기술력을 따라잡기엔 격차가 컸고, 자체 물량 외 핵심 고객 확보에 난항을 겪으며 위기를 맞았다. 인텔은 올 상반기까지 누적적자가 53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7조원을 넘었다. 어닝 쇼크에 인텔은 직원을 감원하며 몸집을 줄이고,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집적회로 반도체) 지분을 일부 매각함과 동시에 이번 파운드리 분사까지 구조조정안을 내놓으며 새 국면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
업계에서는 인텔의 선단 공정 제조 경쟁력을 따져볼 때 파운드리 부문 매각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인텔의 최선단공정은 7나노 수준으로 알려진다. 앞서 인텔이 2016년 파운드리 사업 진출 후 2년 만에 철수한 것도 7나노 수율 개선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인텔은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했을 당시엔 이미 고성능 칩은 대만 TSMC에 제조를 위탁했다.
일각에선 인텔의 분사가 AMD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AMD도 반도체 제조사업(팹) 부문이 있었지만 2009년 분사를 단행했다. 심각한 적자 때문이다. 이후 GF의 AMD 지분율은 지속 축소되다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무바달라인베스트먼트가 GF 지분 100% 소유하면서 완전히 결별하게 됐다.
다만, 인텔은 파운드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겔싱어 CEO는 지난 8월 콘퍼런스콜에서 "2026년 많은 신규 공장과 새로운 공정 기술이 가동되고, 2027년에는 좋은 시기를 맞을 수 있다"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비용 감축 등 운영 개선을 내년에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미국 정부가 자국 안보를 위해 첨단 칩 제조능력을 갖춘 자국 기업에 보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매각 가능성을 불식시킨다. 미국 정부는 애리조나 공장 지원금 명목으로 총 200억달러(약 26조6400억원)의 보조금과 대출을 제공하기로 한 바 있다. 여기에 미국 국방부는 군사용 반도체 개발·생산 프로젝트를 인텔에 맡기며 최대 30억달러(약 3조9000억원)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일정 시점에서 IPO(기업 공개)나 추가 투자 유치 등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매각했어도 살 만한 기업은 마땅치 않았을 것"이라면서 "막대한 투자비를 감안하면 사업을 다듬어 매각하거나 상장 후 새로운 투자자를 영입하지 않으면 회생 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 유일한 IDM 지위를 이어가게 된 삼성전자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짙어진다. IDM은 반도체의 설계, 테스트, 제조, 후공정 등 모든 반도체 생산공정을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을 뜻한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스템LSI 3개의 별도 사업부를 거느린 삼성전자는 대표적인 IDM 중 하나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경쟁업체와 차별화 전략으로 메모리와 파운드리에 이어 첨단 패키징까지 전 공정을 수행하는 '턴키 전략(일괄 수행)'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현재 메모리에서 돈을 벌어 매년 15조~20조의 파운드리 설비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지속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존 메모리사업부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적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약 2조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산되며, 올해 상반기에도 1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인텔의 분사 결과에 따라 삼성 파운드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선 삼성이 파운드리를 분사해도 단독 생존이 어려워 카드를 꺼내지 않겠지만, 인텔이 큰 규모의 투자를 받아 심폐소생에 성공한다면 삼성도 지금과 다른 파운드리 전략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대만 TSMC의 독주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상위 10개 파운드리 업체 점유율을 보면 올해 2분기 TSMC 점유율은 62.3%를 기록했다. 1분기 61.7%보다 0.6%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삼성전자 점유율도 1분기 11.0%에서 2분기 11.5%로 늘었으나, TSMC와의 격차는 50.7%포인트에서 50.8%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한편, 파운드리 시장의 연간 성장률은 내년 20%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소비자 제품에 대한 수요 약세로 부품 제조업체들이 보수적인 재고 전략을 채택하고, 올해 파운드리 평균 가동률이 8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엣지 AI에 의한 단위당 웨이퍼 소비량 증가, 클라우드 AI 인프라의 지속적인 확장 등의 요인들이 내년 파운드리 시장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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