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터뷰 2화] “15시간 활활” 현장 본 소방 가족의 반응(영상)
“남편이 저 뜨거운 불길 속에 들어갔을 때 어떤 마음일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 슬퍼져요. 상상도 하기 싫어요. (다른) 소방관님도 마찬가지겠지만 남편도 ‘(내가) 먼저 들어가야지’ 늘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조심하란 말도 조심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가지 마’ 이런 말도 할 수 없잖아요.”
“‘엄마, 아빠는 그냥 불만 끄고 오는 거야’라고 하면 저도 그냥 ‘그래 맞아. 불만 끄고 오는 거지 뭐 다른 일이 있겠어’ 하고 넘어가는 것 같아요. 밤 10시쯤부터는 되게 고비예요. 그냥 자려고 노력해요. 생각을 안 하고 싶어서….”
지난 4월 23일 토요일 오후 5시 30분. 경기 안성시 미양면 보체리 공장 단지에서 난 화재 영상을 이날 출동했던 소방 영웅 5명의 가족들에게 직접 보여줬습니다. 아내들은 연신 눈시울을 붉혔고, 아이들은 부모님 걱정에 눈이 휘둥그레졌죠.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소방관이었던 자녀들은 저런 위험천만한 상황에 자신의 부모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22년차 베테랑 소방관인 김미진 소방위의 아들 홍준환(17)군은 영상을 보는 내내 초조한 듯 마른침을 삼켰고, 19년차 소방관 장문수 주임의 딸 지우(11)양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준환군은 현장을 직관한 직후 “(화재 장면) 처음 봤다”며 “엄마가 위험하게 일하시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목숨까지 걸고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장지우양은 “엄청 위험하고 아빠가 이걸 끄기에 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걱정은 되지만 잘 할 것 같다”고 했는데요.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태어나 보니까 소방관 딸이었는데 아빠가 소방관이었다는 게 신기했다”며 “아빠가 소방서를 많이 다녀서”라고 답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지우 아빠는 소방관이었고 아빠는 늘 무사히 돌아왔기에 그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얘기일 겁니다.
“화재 현장을 직관하고 나니 너무 생생해 더 걱정된다”며 연신 눈물을 훔치던 장예나(31)씨는 “남편이 살아서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이 자고 난 뒤 남편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했죠. 남편이 이날 그렇게 가버린 뒤 이틀 만에 퇴근했다고 전한 그는 4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렸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행인 건 아이들이 많은 위로를 줬다고 해요. 특히 올해 다섯 살인 첫째가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늘 노력한다는데 “‘엄마, 아빠는 단지 불만 끄고 오는 거야’라고 하면 저도 그냥 ‘그래 맞아. 불만 끄고 오는 거지 뭐 다른 일이 있겠어’하고 넘어간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2년 차인 이한빛 반장은 진압대여서 직접 화재 현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소방관인 데다 이번 안성공장 화재가 입직 후 가장 큰 화재 현장이어서 더 없이 긴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틀 내내 가족들에게 연락할 틈조차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죠. 그 시간 남편의 고통과 예나씨의 고통은 동기화된 상태가 아니었을까요.
두 아이의 엄마인 장예나씨에겐 남다른 사연이 있었습니다. 직업군인이었던 남편이 첫째 출산 후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소방관의 길을 선택했다고 해요. 처음 소방관이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예나씨는 ‘진짜 될까?’라는 마음에 반대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나씨는 전역 후 수험생활을 한 남편을 아낌없이 지원했고, 남편은 1년 만에 덜컥 소방관 시험에 합격해 버렸습니다. 예나씨는 그제서야 ‘현타’가 왔다고 했습니다.
“공무원 되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사실 될까 하는 마음이 컸고, ‘안 되면 다른 일을 알야봐야지’라는 생각으로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서로가. 근데 붙고 나서 어떻게 내가 감당해야 되지? 소방관 아내가 되면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육을 받기 위해 소방학교에 입교할 때쯤에는 장예나씨 배 속에 둘째 아이가 있었다고 해요. 둘째를 낳을 때까지 무려 4개월이나 떨어져 지냈는데, 첫째를 보살피며 긴 시간을 홀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설움이 복받친다고 합니다.
예비 소방관인 다혜씨의 아버지 송창원 팀장님도 뒤늦게 소방관이 된 사례라고 했습니다. 원래는 버스기사였는데, 셋째를 낳고 난 뒤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도전했다고 해요. “저희가 네 자매인데, 버스기사를 하시다가 셋째를 낳고 보니 돈도 더 필요하고, 소방관도 하고 싶고 해서 시험 여러 번 보셔서 어렵게 붙은 걸로 알고 있어요. 옛날 앨범 보면 아빠가 저희 업고 공부하는 사진도 있어요.” 다혜씨는 성인이 된 지금 용감했던 아빠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같은 길을 걷기 위해 지난해 소방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소방 영웅의 자녀, 그러니까 ‘불수저’ 자녀들은 기본적으로 참는 데 익숙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게 늘 아빠나 엄마를 양보해왔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처음부터 인내심이 많았던 건 아니었다고 해요. 오랜 시간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변한 겁니다.
예비 소방관 송다혜씨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댁에 놀러 갔다가 긴급출동 명령을 받고 아빠를 먼저 보내줘야 했던 날을 회상하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왜 우리 아빠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희생을 하고 위험을 무릅써야 되나?’ 그런 생각도 했고, 아빠한테 출근 안 하면 안 되냐고 말한 적도 많아요.”
22년 베테랑 소방관의 아들 홍준환군은 어린 나이에 늦게 귀가하는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좋진 않았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여자 소방관은 흔치 않아 더 멋있어 보이고, 자랑스럽지만 어릴 땐 늦게 들어오시니까 좀 안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더 오래 같이 있었으면 좋으니까”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안성공장 화재 당시에도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하며 엄마에게 종일 전화를 했다고 한 준환군. “그날은 연락이 안 되다가 마지막에 한번 된 것 같아요.” 이런 상황들이 익숙해 학교에서 소방 대피 훈련을 할 때마다 “엄마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장지우양도 야외활동 외에는 아빠와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해요. “아빠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올 때까지 별일 없겠지 하고 기다리는 게 조금 익숙하다”고 답한 지우양은 언제 아빠 생각이 가장 많이 났냐는 질문에 지난해 학교에서 했던 소방 대피 훈련 때라고 답했습니다. 지우양은 “작년(3학년) 학교에서 소방 대피 훈련할 때 영상을 시청하는데, 그때 아빠 생각이 조금 들었다가 말다. 영상 시청 후 훈련에 임할 때 초조했다”고도 고백했습니다. 초조한 이유에 대해 아빠는 늘 이런 훈련을 할 테고, 훈련 뒤 불이 난 현장에 달려가 자신 같은 시민들을 대피시킬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족들과 안정적인 삶을 희망해 선택한 직업인데 왜 가족들을 희생시켜야 할까요? 이런 힘든 직업이 싫어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본 적은 없을까요? 소방 영웅 가족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봤습니다. 그러자 베테랑 소방관의 아내이자 예비 소방관인 송다혜씨의 어머니가 우문현답을 내놓았다고 전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크고 나서 엄마한테 물어봤죠. 아빠 비상 걸리거나 갑자기 출동하면 엄마는 안 무서웠냐고. 근데 엄마는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고 걱정되지만 사람을 구하는 영광스러운 직업이니까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사람을 구하는 영광스러운 직업이라 자신은 괜찮다’는 이 말에서 소방 영웅 가족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습니다. 소방 영웅은 물론 그의 가족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희망을 보게 되는 게 아닐까요? 다음 편에선 소방 가족들이 영웅들에게 전하는 진심을 전해드릴게요.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최민석 기자
이하란 기자, 조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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