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사체 쏟아졌다…한 해 보호종 870마리 친 죽음의 도로

이수민, 황수빈 2024. 9.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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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경기 여주시 한 야산 인근 갓길에 수달의 사체가 놓여있었다. 반대편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가 바람을 일으키자 사체에 붙어있던 파리 떼가 분진처럼 날아올랐다. 로드킬(동물 등이 차도에서 차량에 치여 죽는 것) 사체 처리업체 대표 장영상(59)씨는 흰 비닐에 사체를 주워 담았다. 수달은 멸종위기 1급 동물이다. 장씨는 “부패 정도로 봐선 추석 연휴였던 17~18일 사이에 죽은 것 같다”며 “인근 방개천에서 더위를 피하거나 밤사이 먹이를 찾으러 나왔다가 변을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트럭을 몰고 인근 폐기물 처리장으로 향했다. 들판 한쪽에 서 있는 5톤 규모 냉동 컨테이너 문을 열자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컨테이너 안쪽엔 겹겹이 쌓인 다양한 크기의 자루들이 있었다. 장씨는 “사체를 모아 6개월에 한 번씩 소각장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경기 여주 점동면 한 폐기물처리장에 위치한 로드킬 수거 냉동고. 여러 동물의 사체가 자루에 담겨 있다. 이수민 기자


폐기물업자였던 장씨는 약 5년 전 멧돼지 사체를 피하려다가 사고를 당한 여성을 보고 로드킬 사체 수거업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옛날엔 한 달에 70~80마리씩 치웠는데 요즘엔 120~130마리 정도로 늘었다”며 “신고가 잘 들어오지 않는 새나 파충류까지 합하면 로드킬로 죽는 동물 수는 집계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장씨는 새끼 고라니와 고양이가 도로에서 죽었다는 신고를 연이어 받고 현장으로 갔다.

19일 오후 경기 여주시에서 로드킬을 당한 새끼 고라니와 고양이. 사진 장영상씨 제공

매일 217마리씩 길에서 죽는다


차준홍 기자

로드킬 사고 접수 건수는 크게 늘고 있다. 지난 8월 국립생태원이 집계한 ‘동물 찻길 사고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만 5107건이었던 로드킬 신고 건수는 지난해 7만 9278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정부가 지정한 법정보호종의 로드킬 건수는 870건에 달했다. 전년(279건) 대비 3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멸종위기 2급인 삵이 480건으로 가장 많았고, 멸종위기 1급인 수달도 211건이었다.
차준홍 기자


로드킬이 가장 자주 발생하는 달은 4~7월이다. 더위가 꺾이고 날씨가 선선해지는 10~12월에도 증가세를 보인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동물 활동량과 교통량에 비례해 로드킬 발생 건수도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차량 통행량이 늘어나는 추석 연휴 기간 고속도로 위 로드킬 발생 수는 평소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20만건 추정…로드킬 어떻게 줄이나


정근영 디자이너

로드킬 급증 원인 중 하나로 도로 직선화가 꼽힌다. 도로를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내지 않고 직선으로 뚫으면서 차들의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운전자가 시속 60~70㎞로 주행할 경우 동물이 갑자기 튀어나와도 시간을 벌 수 있지만, 과속 차량은 어쩔 수 없이 동물을 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형을 거슬러 도로를 내면서 동물의 이동 경로가 막히고, 기존 곡선 도로와 새로 만든 직선 도로가 이중으로 사용되면서 주변 서식지가 훼손되기도 한다. 지난 2020년 경북 울진에 36번 국도를 신설할 당시 산양들이 고립되기도 했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편리함을 위해 도로를 직선화하는 과정과 더불어 기존 도로를 야생동물 서식지로 복원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17일 오후쯤 경기 여주시 점동면 처리산 한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것으로 보이는 수달. 이수민 기자


지난 2018년부터 ‘동물 찻길 사고 조사·관리 지침’이 시행되면서 집계된 로드킬 건수가 늘어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송의근 국립생태원 박사는 “지난해 집계된 로드킬 건수는 7만여 건이었지만 실제론 20만여 건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지형에 맞는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와 도로관리기관이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 박사는 이어 “독일·스웨덴처럼 전방에 동물이 지나가면 표지판에 불이 들어오게 하는 ‘야생동물 감지 카메라’ 같은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수민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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