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사하고 서늘한 정해인, 소시오패스 빌런 파격 변신
주짓수 등 배우며 제대로 된 액션 연기
칸에서 기립박수…어머니 “장하다” 보람
날카로운듯 텅 빈 눈, 지체 없이 상대방의 숨통을 끊는 비정함, 강하고 비뚤어진 신념, 나르시시즘(혹은 ‘관종’). 배우 정해인은 이런 요소를 가진 인물로 분한 적이 없었다. ‘베테랑2’에서 박선우를 표현하는 정해인의 얼굴은 분명 낯설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해인은 “연기할 때 보통 90% 이상 배역을 체화하고 다가가는데 박선우는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 많아 어려웠다”며 “소시오패스 성향의 인물을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돌이켰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선 “여러 사회 현상이 만들어낸 상징”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욕심이 과열돼 법적인 선을 넘는 인물에게 사람들이 ‘해치’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소위 관종인 ‘해치’는 사람들의 요구대로 ‘집행’한다”며 “죄 없는 사람이 희생될 수도 있는 그 집행이 올바른지 아닌지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소년 같은 미소는 정해인의 트레이드마크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웃지만 첫맛은 서늘하고 끝맛은 비릿하다. 이런 표현법을 택한 이유는 뭘까. 정해인은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며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여유에서 미소가 나올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베테랑2’는 정해인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류승완 감독은 그를 ‘흐트러뜨리고’ 싶어 했다.
그는 “내가 빌런(악당)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사로잡혀 연기하지 않았다. 그래야만 입체적이고 다양한 표현이 나올 것 같았다”며 “감독님께서 그간의 이미지를 깨부수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셨고, 나도 그걸 원했다. 내가 봐도 어색하고 기괴한 표정들이 스크린에 나왔다”고 했다.
정해인은 이렇게 과격한 액션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빗속 격투 장면, 남산 추격 장면 등이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그는 “액션의 대가인 감독님을 만나 ‘제대로 된 액션’을 보여드렸다. 주짓수 등 기술도 배워야 했지만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했다. 심폐지구력을 키우려고 많이 달렸다”며 “배우보다 운동선수처럼 살았던 그때가 살면서 가장 건강했던 시기다.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은 삼겹살”이라고 말했다.
캐릭터와 ‘동기화’도 쉽지 않았지만 빠져나오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정해인은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아 이런 배역은 자주 하면 안 될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인간 정해인과 작품 속 캐릭터를 분리하려고 늘 노력하지만 오랫동안 집중하다 보니 내게서 박선우가 묻어나왔다”며 “촬영이 끝나고도 사람 만나기가 두려웠다. 박선우의 모습이 남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신인 시절 극장에서 본 ‘베테랑’의 주인공이 된 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해인은 “캐스팅됐을 때 ‘앞으로도 열심히 하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겠구나’ 싶었다”며 “그동안 성장해 작품에 합류할 수 있게 됐으니 ‘베테랑2’가 9년 만에 나와 한편으론 다행”이라며 웃었다.
정해인은 요즘 드라마 ‘엄마친구아들’을 통해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첫 로맨틱코미디물이다. 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대중을 만나는 건 경사이기도 하지만 두 캐릭터의 괴리가 크다.
그는 “‘엄친아’를 보시는 분들이나 팬들은 적잖이 충격받으실 것”이라면서도 “내게 관심이 없었던 분들이 이번 영화를 통해 관심을 갖게 되고 다른 작품을 궁금해 하신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테랑2’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수많은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는 강렬한 기억도 선사했다. 동행한 어머니는 다리에 힘이 풀려 객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아무 말 없이 울고 계셨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며 “‘고생 많았다, 장하다’고 하셨다. 칸에 어머니를 모시고 간 일은 지금까지의 배우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다.
정해인은 칭찬을 즐기진 못하는 편이다. 정해인은 “이런저런 수식어가 나란 사람을 너무 포장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고 무섭다. 배우로 불리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묵묵히 차근차근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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