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할 바다는? [정기수 칼럼]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거부 ‘정치 의사’들은 빼고….
환자, 의료 개혁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한 의사 단체들
‘버티면 이긴다’라는 의사들과의 씨름은 시간 낭비
의사들이 너무 뻣뻣하다.
정확히 말하면, 의사들이 아니고 의사들을 대표한다는 의협과 전공의 비대위 간부들이다. 이 간부들이 의사들과 전공의들을 얼마나 대표하고 있는지도 사실 불분명하다.
의사 관련 단체 대표들이 막무가내다. 도대체 대화할 생각이 없다. 무조건 백지화하라는 것이다. 환자나 의료 개혁보다 자기들 자존심이 더 중요해 보인다. ‘버티면 이긴다’라는 확신에 차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겐 의료 개혁 추진 직전의 의료 현실이 최선이었나?
그렇지 않다.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의대 정원이 단 1명이라도 많거나 적어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증감 필요 숫자를 적시한 적이 없다. 의사 수 늘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통령 윤석열과 보건복지부 차관 박민수 등이 강경하게 주장한 2000명 증원 숫자가 ‘과학’은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주먹구구 정도는 아니었더라도 우격다짐에 가까웠다.
하지만 정부가 밀어붙인 숫자에 흠이 있다고 해서 의사들이 정당성을 바로 얻는 건 아니다. 반대만 했지, 자기들 주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내놓으라고 하면 말이 없어진다. 그러면서 정치적인 수사(修辭)로만 대응한다.
그들은 말로는 정치인 이상이다. 전직 의협 회장 한 사람 왈,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라고 했다. 이 말이 이번 정부가 쓸데없는 오기, 즉 “우리는 의사를 이길 수 있다”라는 투지를 불태우며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이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악화시킨 한마디였다.
그 전직 회장보다 더 정치적(투사적)이고 거친 현직 의협 회장이 급기야 “의협 손에 국회 20~30개 의석이 결정된다”라고 총선 전에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집권 여당 총선 대패는 실제로 의정 갈등이 이바지한 바가 상당히 컸다.
그는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난 이후, 여당에는 물론 야당에도 마음을 전혀 주지 않는 고난도 플레이하고 있다. 몸값 불리는 요령을 훤히 꿰뚫고 있는 프로다.
오직 정부하고만 싸운다. 그들 눈에 보건복지부 장·차관 정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니 ‘정부’는 곧 ‘윤석열 대통령’이다.
“정부가 전공의들을, 이 땅의 모든 의사를 노예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전문가로서 존중할 때까지 싸우겠다. 정부는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사직한 전공의들을 도망간 노예 취급하며 다시 잡아다 강제노동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의협 의사들만 이렇게 투사가 된 게 아니다. 아직 의사가 되지 않은, 배우는 단계의 전공의(수련의) 대표도 반 정치인이다.
자기들의 상위 단체라 할 의협 회장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하면서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끌어내려야 한다”라고 위협했다. 의대 아닌 공대-의전원 출신 전공의로서 대통령도 만나고 여당 대표도 만나니 의협 회장 같은 사람은 간단히 무시한다.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이 이런 사람들을 협의체에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돼 수사만 해 온 사람이다.
운동권 투사들을 상대해 본 적이 없다. 운동권과 사고나 행동이 비슷한 정치인들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이 방면의 백면서생(白面書生)이다. 그가 운동권 뺨치는 전공의 대표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었다.
그의 대변인이 당 대표의 고군분투를 강조하면서 “거의 읍소 수준으로 협상장에 돌아올 것을 요청드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쉽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라고 하자 발끈한 것이다.
“읍소는커녕, 단 한 번 비공개 만남 이후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한동훈 당 대표와 소통한 적 없다. 거짓과 날조 위에 신뢰를 쌓을 수는 없다.”
대표가 되기 전엔 명함도 없고 권한도 없는 처지라 못 만났고, 이번에 급해졌을 때는 대변인들이 전화해도 안 받았던 그가 불통 탓을 순진한 한동훈에게 돌렸다.
한동훈이 ‘정치 의사’들을 이번에 만나고 다니며 협의체 참여를 설득하는 건 좋은 공부와 경험은 될 것이나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 의사들은 빼고 가는 게 더 낫다. 그들은 확실한 명분, 즉 선불(先拂)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 선불이란 당장 내년도 의대 증원 취소 또는 대폭 축소다. 학부모들 반발 같은 건 대통령이 하려고만 한다면 해결책이 꼭 없다고만 할 수 없다.
한동훈은 한 방송의 음악 주제 프로그램에 나와 비틀즈 멤버들 대화를 소개하며 자기 자신도 그럴 결심이 서 있다고 했다.
“세상이 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나라와 국민이 잘됐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 절벽에 뛰어내려야 할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릴 것이다.”
그가 뛰어내릴 곳은 그냥 바다가 아닌 윤석열의 바다다. 대통령이 이 중차대한, 본인 자신과 나라의 위기 국면에서 결심하도록 압박하는 것만이 알렉산더의 매듭을 푸는 길이다.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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