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마르는 ‘토종’… 이상기후에 미래양식 연구 속도

박상은 2024. 9. 21.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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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끓는 한반도… 아열대 작물이 토종 식물 대체
게티이미지뱅크


지구온난화로 점점 더 덥고 습해지는 한반도 기후는 국내 농작물 지도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미래 한반도에 적합한 신규 작물을 도입·개발하고 관련 농업 기술을 연구하는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가 주목받는 이유다. 연구소 측은 국토 면적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아열대 기후권 지역이 2050년대에는 56%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아열대 기후로 분류되는 제주는 지난 12일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으며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더운 9월 날씨를 기록했다.

4년간 2배 늘어난 망고 재배…파파야 신종 개발도

“아열대 과일이나 채소를 키우고 싶다는 농가의 문의가 최근 7~8년 사이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기후변화를 체감하면서 새로운 작물에 관한 관심도 커지고 있죠.”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의 김성철 연구관은 20일 “기후변화로 망고 같은 아열대 작물을 지금보다 낮은 비용으로 재배할 기회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농촌진흥청 소속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 연구 중인 아열대 과일의 모형.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제공


연구소는 현재 아열대 작물 50여종을 국내에 도입해 기후 적응성 등을 살펴보고 있다. 제주시 애조로에 있는 연구소 부지 내에는 온실과 하우스 수십 동이 들어서 있고, 노지에서도 올리브나무 등 각종 작물 재배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연구소가 유망 소득 작물로 선정한 망고, 패션프루트, 올리브, 파파야, 여주, 강황, 공심채 등은 전국 농가에서 실제 재배가 진행 중이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 재배 연구를 위해 심은 올리브 나무.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제공


신규 아열대 과수 중 절반 이상은 망고 농가다. 망고의 재배 면적은 지난해 121㏊로 2020년(67㏊)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아열대 채소 중에서는 박과 채소인 여주 재배가 가장 활발하다. 지난해 여주의 재배 면적은 76㏊로 집계됐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관계자가 연구소 하우스에서 재배한 애플망고를 수확하는 모습.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제공


연구소 측은 2~3년 안에 새로운 국산 파파야 품종도 선보일 예정이다. 파파야는 아열대 과일이지만 완전히 익지 않은 상태에서 볶음요리나 샐러드 채소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연구소는 과육이 익은 뒤에도 향이 좋고 당도가 높은 파파야를 만들기 위해 품종 교배 등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

이날 살펴본 파파야 하우스 안에는 2~3m 높이까지 자란 파파야나무 100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유전자 계통이 각각 달라 과실의 크기와 모양, 색깔이 미세하게 차이가 났다. 김 연구관은 “다양한 유전자원을 수집해 맛, 향, 크기 등이 좋은 품종끼리 교배하고, 이를 재배한 뒤 다시 선별·교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며 “변화한 환경에서 잘 자라면서 동시에 소비자 식성에 맞는 품종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는 극심한 폭염에 더해 예측하기 힘든 한파도 몰고 온다.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고 있는 제트기류가 약해진 탓이다. 김 연구관은 “과수가 꽃을 피우려면 특정 온도가 일정 시간 동안 유지돼야 해서 최고·최저기온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며 “기후변동성이 커지면서 더 세밀한 농업 기술이 필요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포도 중에서 샤인머스캣 생산이 급격히 늘어난 것처럼 과일·채소 소비 시장은 빠르게 변화 중”이라며 “한국은 아직 아열대 작물 재배를 위한 하우스 운영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온 상승에 따라 아열대 작물의 시장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수온 대응’ 참조기·벤자리 새 양식 품종으로

기후변화 대응이 시급한 건 농업뿐만이 아니다. 바닷물이 28도 이상으로 뜨거워지는 여름철 고수온 현상은 더 오래, 더 강도 높게 찾아오고 있다. 고수온이 지속하면 어패류의 생리기능이 불안정해지고 면역력이 감소해 질병으로 폐사할 가능성이 커진다.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의 ‘2024 수산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고수온 특보는 관련 특보 체계가 만들어진 2017년 이후 가장 늦은 시기인 9월 22일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어류 양식 생산량은 약 8만t으로 전년(9만1000t) 대비 12% 줄었다. 넙치(광어), 조피볼락(우럭) 등 양식 비중이 높은 어종이 고수온 피해 등으로 대량 폐사하면서 생산량이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수과원 아열대수산연구소 미래양식센터는 해양 수산생물의 종 보전과 양식 기술개발 임무를 맡고 있다. 연구소는 2021년 고수온 등 환경변화에 강한 참조기를 미래 양식 품종으로 선정하고, 품질을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양식 기술개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지난달에는 양식 참조기 종자(치어) 약 20만 마리를 제주도 내 민간 넙치 육상양식장 2곳에 분양하며 대량생산을 위한 현장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역 환경에 따라 일부 차이가 있지만 참조기의 한계수온(생존 가능 수온 범위)은 31도 수준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아열대수산연구소 수조에 있는 벤자리. 아열대수산연구소 제공


수과원은 제주지역의 특산 종인 벤자리 역시 미래 양식 품종으로서 양식 기술개발을 추진해 왔다. 특히 경남도의 요청에 따라 지난달 자체 생산한 벤자리 치어 약 4000마리를 남해안 가두리 2곳에 분양해 사육시험에 들어갔다. 경남 지역 어민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신규 양식 품종 종자를 먼저 요청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과원은 이외에도 흑점줄전갱이, 잿방어, 대왕붉바리 등 미래 양식 품종으로 다양한 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에서 서식하던 생물을 양식 품종으로 산업화하기 위해선 특정 생물이 사육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번식이 가능한지,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 등 종합적인 생태·생리 연구 데이터가 장기간 구축돼야 한다.

아열대수산연구소 유용운 연구사는 “기후변화는 양식 어업인들에게 당면한 문제이고 고수온이나 환경변화에 강한 품종 도입을 바라는 어업인들이 많지만, 새로운 양식 품종을 선정하고 산업화하기 위해선 체계적인 기초연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연구사는 “참조기와 벤자리는 누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제 막 시험 양식의 첫발을 뗀 단계”라며 “질병과 경제성 등 지켜봐야 할 요소들이 많다”고 말했다. 수과원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기술 지원을 통해 해당 품종의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제주=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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