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삐삐 폭탄

태원준 2024. 9. 2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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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특수작전부대는 '맏아들'이란 작전명의 비밀계획을 수행했다.

베트콩이 전선 곳곳에 은닉한 탄환을 미군이 발견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이를 역이용하는 것이었다.

베트콩의 AK소총 탄환을 격발 시 발사 대신 폭발토록 변조했고, 그런 '폭탄 탄환'이 든 탄창 1만여개를 은닉처의 진짜 탄환과 바꿔놓았다.

이를 까맣게 모른 채 변조 탄환을 가져간 베트콩 부대에선 미군을 향해 사격하다 총이 터져 사망하는 병사가 속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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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논설위원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특수작전부대는 ‘맏아들’이란 작전명의 비밀계획을 수행했다. 베트콩이 전선 곳곳에 은닉한 탄환을 미군이 발견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이를 역이용하는 것이었다. 베트콩의 AK소총 탄환을 격발 시 발사 대신 폭발토록 변조했고, 그런 ‘폭탄 탄환’이 든 탄창 1만여개를 은닉처의 진짜 탄환과 바꿔놓았다. 이를 까맣게 모른 채 변조 탄환을 가져간 베트콩 부대에선 미군을 향해 사격하다 총이 터져 사망하는 병사가 속출했다.

이 작전은 심리전이었다. 잇단 총기 폭발에 ‘내 총은 괜찮은가’ 하는 의구심이 확산되면서 베트콩은 심각한 사기 저하를 겪었다고 한다. 19세기 식민지 쟁탈전에서 영국군도 활용했던 탄환 교란 전술은 며칠 전 이스라엘의 ‘삐삐 폭탄’ 공격을 통해 재현됐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대원들이 갖고 있던 삐삐가 같은 시각 일제히 폭발해 수천명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 기상천외한 공격의 결정타는 이튿날 가해졌다. 하루 만에 똑같은 방식으로 헤즈볼라의 무전기가 연쇄 폭발해 수백명이 죽거나 다쳤다. 전혀 의심하지 않던 일상의 통신수단이 폭탄으로 돌변한 데 이어 비슷한 전자기기가 다시 원격 폭발의 재료가 되자, 레바논에선 ‘내 휴대폰은 괜찮은가’ ‘내 TV는 괜찮은가’ 하며 모든 전자제품을 의심하는 공포와 불신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폭발한 무전기 하나는 공교롭게 삐삐 폭탄 사망자의 장례식에서 터졌다. 대피한 조문객 중 누군가가 가족 안부를 확인하려 휴대폰을 꺼내자 여기저기서 “전화기 꺼!” “배터리 분리해!”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를 취재하던 외국 기자의 휴대폰을 빌려 급히 아들에게 전화한 어느 엄마의 첫마디 역시 “당장 전화기 꺼!”였다고 한다.

모든 전술의 공통된 약점은 학습과 모방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일상 제품을 폭탄화한 신종 공격도 미래의 테러에 모방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어떤 테러집단이 어디를 겨냥해 똑같은 짓을 저지를지 모두가 불안해할 세상이 열렸다. 이스라엘이 매우 위험한 불장난을 했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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