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자발적 미혼부
친구 A(35)는 13개월짜리 딸에게 최대한 많은 돈을 남겨주고 싶다고 한다. ‘나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며 자랐던 자신과 딸은 달랐으면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A는 아내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결혼 후 약 4년이 지나 아이를 가졌던 A는 딸이 태어나기 전 아내와 합의한 끝에 자발적으로 미혼부가 되겠다고 결정했다. A는 행정서류상 아이를 홀로 키우는 것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A 부부의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법적 부부만 아닐 뿐 A 부부는 한집에서 알콩달콩 살아가며 딸을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완연한 3인 가구의 삶이다. 단지 행정 시스템상으로만 A는 미혼부이고, A의 딸은 편부모 가정에서 자랄 뿐이다.
A가 미혼부의 삶을 선택하기로 한 이유도 ‘돈’이다. 정확히는 돈을 벌기 위한 집 때문이다. A는 3년제 대학을 나와 인천 송도에서 생산직으로 취업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월급만으로는 큰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하고 송도에서 빚을 지렛대 삼아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불려나가기로 했다. A는 결혼을 앞두고 청약에 당첨된 송도의 아파트 1채와 프리미엄을 주고 매입한 같은 지역 분양권 2채를 더해 총 3채를 보유하게 됐다. A의 아내가 당첨된 다른 인천지역 아파트 청약 1채까지 더하면 A 부부는 총 4채의 아파트를 보유한 다주택자였다. 이 시기 A는 부자가 되겠다는 꿈과 함께 ‘부동산은 불패한다’는 신조까지 가지게 됐다. 2010년대 중반 부동산 시장 열풍이 불었던 송도에서는 빚을 내서라도 여러 채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바보라고 조롱당할 정도였다.
A는 입주 시기가 각기 다른 아파트 4채에 차례로 실거주하다 팔아치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지난 정부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 정책을 펼치면서 나타났다. A가 아내와 혼인신고를 하게 되면 그대로 부부는 다주택자로 분류되고 아파트를 팔 때마다 세금 폭탄을 떠안아야 했다. A로서는 아파트를 매각하더라도 얻을 이득이 사실상 제로인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손해가 더 큰 상황이었다. A는 우선 다주택자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아내와 혼인신고를 최대한 늦추기로 했다. A는 “추후 과세 당국에 걸리더라도 소명할 수 있고, 벌 수 있는 돈의 단위가 달라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것보다 낫다”면서 “주변에서 다 이렇게 부자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지난 2년여간 부동산 침체기가 찾아오면서 송도의 아파트 매매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A의 아파트 매각 계획도 흔들리게 됐다. 수익을 얻은 후 가장 좋은 집으로 이사해 혼인신고를 마친 뒤 아이를 가지겠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A는 부동산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우선 아이를 낳은 후 아파트를 정리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결국 그때까지 A는 자발적 미혼부로 살아가기로 했다.
지난해 A의 딸이 태어나기 전 “어떻게 내 자식을 편부모 가정의 아이로 만드냐”며 따져 물었다. A는 “아이 기준 가족관계증명서에도 드러나지 않고 부모와 같이 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문제일 게 없다”면서 “주변에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도 아직 미혼부로 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 년 동안 미혼부, 편부모 가정으로 버티면 현금으로 10억원 이상을 벌 수 있는데 안 하겠느냐”며 “그저 그런 월급쟁이로는 아이에게 풍족한 경험을 선물해 줄 수도 없다”고 반문했다.
A에게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A의 말은 돈이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그러면서도 돈을 축적할 수단은 사실상 사라져버린, 노동만으로는 내가 살 집 한 채도 온전히 품을 수 없게 된 최근의 한국 사회에서 ‘정답’에 가까워진 말이었기 때문이다. A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삶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스스로 미혼부의 삶을 택했다. A는 내 아이가 단기적으로는 사회 시스템상 불리한 시선에 처할지언정 결국에는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산을 얻을 것이라는 희망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연봉 8000만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1년을 모으면 겨우 서울 아파트 1채를 살 수 있다고 한다. 내 연봉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데 A와 달리 나는 정작 내 집도 없다. 첫돌을 한 달여 남긴 아들 태오에게 나는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 순간 아득한 느낌이 밀려온다.
전성필 산업1부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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