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전쟁’ 도마 위… 골머리 앓는 게임 업계

김지윤 2024. 9. 2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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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삽화

국내 게임 업계가 ‘저작권 소송’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사한 게임성을 가진 게임이 포화 상태에 다다르고 경제 불황으로 업계의 보릿고개가 지속되자 ‘지식재산권(IP) 지키기’에 보다 날카롭게 칼을 빼든 것으로 풀이된다. 법적 분쟁에서 막대한 배상금을 청구하거나 서비스 중단을 요구하는 등 게임사의 강경 대응 사례도 눈에 띄게 늘었다.

20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여러 게임사들이 저작권과 관련해 법적 다툼에 휩싸이면서 악연이 깊어지고 있다. 과거 중국, 일본 등 해외 게임사와 표절 시비가 잇따랐다면 근래엔 국내 게임사 간의 법정 다툼이 심심찮게 발생하는 모양새다.

엔씨소프트는 자사의 대표 게임 ‘리니지’ IP와 관련해 웹젠과 한 차례, 카카오게임즈와 두 차례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 소송으로 부딪히고 있다. 웹젠과는 2021년 6월부터 소송 중이다. 엔씨는 2020년 출시한 웹젠의 ‘R2M’이 2017년 출시된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리니지M’의 주요 콘텐츠를 모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8월 1심에서 승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저작권 침해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R2M이 리니지M의 각 구성요소의 선택, 배열, 조합을 구현함으로써 종합적인 시스템을 모방했고 이러한 행위는 부정경쟁방지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웹젠에 서비스 중단 및 손해배상 10억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엔씨소프트 사옥. 게임사 제공

웹젠은 1심 판결 후 곧바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강제집행정지와 담보 공탁 완료에 따라 항소심 판결 선고까지 R2M의 서비스를 이어가겠다는 게 웹젠의 입장이다. 이에 엔씨는 지난 6일 항소심 재판부에 청구 취지, 청구원인 변경신청서를 제출하고 청구 배상금 규모를 600억원까지 늘려 강경 대응했다.

엔씨는 카카오게임즈 ‘롬’과 ‘아키에이지 워’와도 저작권 관련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엔씨는 카카오게임즈의 두 게임이 각각 자사의 ‘리니지W’와 ‘리니지2M’의 주요 콘텐츠, 시스템 등을 다수 모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롬 소송 제기 당시 엔씨는 “MMORPG 장르가 갖는 공통적, 일반적 특성을 벗어나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엔씨의 IP를 무단 도용하고 표절했다”고 비판했다.

넥슨은 과거 재직하던 개발진이 퇴사 후 설립한 아이언메이스의 ‘다크앤다커’와 약 3년간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넥슨은 자사가 개발 중이던 프로젝트 ‘P3’의 주요 자료를 빼돌려 다크앤다커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아이언메이스는 두 게임 속 구성 요소들이 다르다고 맞서고 있다. 해당 소송은 다음 달 24일 최종 선고만을 남겨둔 상태다.

프로젝트 KV 메인 포스터. 디나미스 원 제공

출시 전 표절 논란에 휘말려 개발이 취소된 사례도 있다. 지난 8일 개발사 디나미스 원은 넥슨게임즈의 ‘블루아카이브’와의 유사성 논란이 확산하자 게임 정보 공개 8일 만에 ‘프로젝트 KV’를 자진 중단했다. 디나미스 원은 블루아카이브를 만든 개발진이 주축이 돼 설립한 회사라 더 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지난 18일엔 일본 대형 게임사 닌텐도가 ‘팰월드’의 개발사 포켓 페어를 대상으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팰월드 모바일’ 개발에 착수한 크래프톤에 향후 어떤 영향을 끼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생겼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최근 게임사의 법적 분쟁이 잦아진 건 게임사마다 매출이나 여러 가지 수익 상승 속도가 떨어져서 자사의 IP를 보호하려는 경영진의 니즈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온라인 게임이 유행하면서 장르 쏠림 현상, 정형화된 게임이 많아졌다“면서 “최근까지도 업계에선 확률형 아이템 모델을 잘 구상하면 돈을 번다는 시각이 팽배했다면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게임 소재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내외부의 요구와 목소리를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게임사는 기획 단계부터 개발자에게 IP에 대한 중요성, 저작권 피해에 대한 위험성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경영진도 성숙한 게임 제작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법원에서도 게임 저작권과 관련해 제대로 된 선례를 잘 쌓아가는 삼박자가 맞물려야 법적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merr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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