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막는 응급환자 수용의무 지침 만들어야 [안기종의 환자샤우팅]
경남지방경찰청 의료수사전담반 수사관과 전문검사 이송제도를 통해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소속 의사 면허를 소지한 검사의 전문 수사를 거쳐 병원이 수용을 거부했던 사유로 밝힌 ‘심폐소생술 환자가 있었다’는 주장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해당 의사는 응급의료법 제6조 제2항을 위반,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응급환자 수용해 살리는 ‘동희법’
김 군의 부모는 아들과 같은 억울한 사건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 달라며 국회와 정부에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의무 법제화를 호소했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일명 동희법)이 국회를 통과해 2022년 12월22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정안은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의무, 그리고 수용 불가능 시 사전 통보 의무와 관련 기준, 방법, 절차를 법제화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문제는 개정 응급의료법이 시행된 지 약 2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응급환자 적정 수용 관리체계’ 관련 시행령과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 관리 표준 지침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뺑뺑이’ 가중하는 정당한 진료거부 사유 지침
보건복지부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지난 9월13일 안전한 응급실 환경을 조성하고 원활한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명분으로 응급의료법상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배포했고,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해당 지침은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로 환자·보호자의 폭행, 협박 또는 장비 손상 등 응급의료종사자가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경우와 통신·전력의 마비, 인력·시설·장비의 미비 등 응급환자에 대해 적절한 응급의료를 행할 수 없는 경우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예시로 든 사유들은 이처럼 지침을 따로 두지 않더라도 응급의료법 제6조 제2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상식적 수준에 불과한 얘기다.
특히 정당한 사유의 예시 가운데 응급의료기관 인력, 시설, 장비 등 응급의료 자원의 가용 현황에 비추어 응급환자에게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는 경우는 판단의 명확한 기준이 없고, 이를 판단하는 주체도 정해져 있지 않아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지난 2월19일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이탈한 인력이 보충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 수련병원 대부분은 응급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전공의 집단사직과 추석 연휴로 의료진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는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정부가 응급의료기관에 한 번 더 확인시켜 준 성격의 지침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응급환자 수용의무 규정의 취지
응급의료법 제6조 제2항은 ‘응급의료종사자는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를 하여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라는 응급의료 거부 금지 의무를 담고 있다. 또 제48조의2 제2항을 보면 응급의료기관의 장은 응급환자 수용 능력 확인을 요청받은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도록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의무를 고지하고 있다.
응급의료법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하지 않고 법원의 최종 판단이 필요하도록 ‘정당한 사유’로만 규정해 응급의료를 거부할 수 있고, 수용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취지는 응급의료기관은 응급환자에 대해 원칙적으로 진료 및 수용 거부를 하면 안 되고, 예외적으로 진료와 수용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즉 응급의료기관은 가급적 응급환자를 수용하고 진료하라는 의미이다.
의료계 반대로 ‘동희법’ 시행령은 미완성
현재 의료진과 병상 부족은 가장 많이 꼽히는 응급의료기관의 진료 거부 사유다. 골든타임 내 모든 응급의료기관이 수용이 곤란한 상황이 되었을 때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한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의료진이 부족해 응급의료 공백은 더욱 커지고, 응급환자들이 구급차를 전전하며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게 되는 상황은 충분히 예상됐다.그렇다면 정부는 응급환자 진료 거부 사유를 지침으로 내보일 것이 아니라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한 와중에서도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를 수용해 치료하고 생명을 살릴 기회를 제공하는 지침을 만들어 발표했어야 했다.
정부는 2022년과 2023년 각각 두 차례에 걸쳐 ‘수용 곤란 고지 관리체계 마련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48조의2 제3항에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위임한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의무와 수용 불가능 시 사전 통보 의무, 그리고 관련 기준·방법·절차에 대한 ‘응급환자 적정 수용 관리체계’를 마련하고, 이에 따른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 관리 표준 지침안’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2022년 첫 번째 협의체에서 논의한 관리체계 관련 시행령과 이에 따른 표준 지침안은 의료계의 반대에 막혀 발표하지 못했고, 2023년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해 보완한 두 번째 협의체에서 논의된 내용 또한 의료계의 반대로 아직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 관리 표준 지침안’은 인근 모든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기 때문에 ‘응급실 뺑뺑이’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해결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정부·국회, 응급환자 살리는 ‘동희법’ 완성해야
의료계가 ‘응급환자 적정 수용 관리체계’ 관련 시행령과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 관리 표준 지침안’의 내용을 모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적 논의를 다시 해서라도 신속하게 시행해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모든 응급의료기관이 중증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만큼 ‘응급실 뺑뺑이’ 상황이 일어났을 때 권역응급의료센터나 119구급상황관리센터, 중앙응급의료센터 상황실로부터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를 요청받은 응급의료기관은 응급환자를 수용하고 응급의료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크고 이로 인한 형사책임까지 감당해야 한다며 반대해 왔다. 이와 관련해 환자단체연합회는 모든 응급의료 관련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책임을 면책할 것이 아니라, 중증 응급환자를 수용해 일어난 의료사고에 한해 응급의료종사자의 형사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2023년 협의체 회의를 거쳐 보건복지부에 전달한 바 있다.
국회와 정부는 골든타임 내 인근 모든 응급의료기관이 수용 곤란 상황에 처한 경우 인력·시설·장비 상황이 가장 좋은, 권역응급의료센터 또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 중앙응급의료센터 상황실이 지정한 응급의료기관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된 일정 중증도 수준 이상의 중증 응급환자를 의무적으로 수용하고, 수용 후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감면하고,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입법적·제도적 조치를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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