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남북 2국가론'에…이재명은 외면, 정동영은 "사고친 듯"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쏘아올린 ‘남북 2국가론’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일 전남 목포의 한 호텔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 전남 평화회의’에서 “북한은 이제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 매우 우려스럽다”며 “평화와 통일이라는 겨레의 염원에 역행하는 반민족적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사실상 흡수통일 의지를 피력해 북한과의 신뢰 구축과 대화를 위해 흡수통일 의지가 없음을 거듭 표명해왔던 역대 정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며 현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전날 임 전 실장은 광주에서 열린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 하지 말자.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며 “헌법 3조 영토조항을 지우거나 개정하자”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국가론에 동조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컸다. 그러자 문 전 대통령이 하루만에 수습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전날에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나서면서 기존 평화·통일 담론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좀 더 적극적인 메시지를 냈다.
노무현 정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행사에서 “임 전 실장이 어제 사고를 친 것 같다. ‘문 전 대통령 생각이냐’는 전화를 몇 통 받았다”며 “임 전 실장이 안타까운 심정에서 평화를 우선 정착시키는 데 집중하자는 취지로 얘기했겠지만, 많은 국민은 통일을 포기하고 북한의 2국가론을 수용하자는 말로 이해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지도부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공개발언에서 임 전 실장 발언 관련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황정아 대변인은 회의 후 “비공개회의에서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말을 보태면 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보니 함구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친문 진영도 임 전 실장 발언에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친문계 의원은 “기념식 현장에서 임 전 실장의 연설을 들었는데, ‘통일하지 말자’고 발언한 건 좀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문 전 대통령과 사전에 공유된 것도 아니고, 친문계가 충분히 공감하는 사안도 아니다”고 했다.
민주당이 선을 긋는 것은 임 전 실장 발언이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여론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임 전 실장 발언이 알려진 뒤 “북핵이 있는데 평화적 분단국가가 어떻게 가능하냐” “비정상국가인 북한을 어떻게 국가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식의 비판이 잇따랐다. 민주당 지지층도 “통일기반조성이라는 당 강령에 위배된 주장”이라고 반발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임 전 실장의 발언이나 행동은 늘 북한과 닮았다”고 지적했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19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순방 중인 체코 프라하 현지에서 “현실성이 없는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임 전 실장의 주장을 놓고 “북한의 연이은 무력도발로 남북 관계가 꽉 막힌 현실에서 한 번쯤 논의해볼 만한 화두”라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있는 현시점에서 ‘통일을 하자’는 건 공허한 말이거나, 아니면 전쟁을 하자는 것”이라며 “오히려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향부터 찾자는 임 전 실장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전날 자신의 기념사를 “도발적 발제”라고 자평한 임 전 실장도 이날은 “건강한 토론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현재는 여론 비판이 거세지만, 향후 평화적인 2국가론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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