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통치 정당성 위기"까지 나왔다…中 '정년연장'에 불만 폭주

이도성 2024. 9. 2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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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젊은이들이 저렴한 노점 식당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솔직히 힘이 빠진다. 일은 더 오래 해야 하는데, 연금은 늘지도 않는 것 아니냐."
중국 정부가 실시한 '정년 연장' 정책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중국 저장성에 사는 한 20대 직장인은 이렇게 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지인들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정년 연장을 둘러싼 중국인들의 불만은 폭주 직전이다. 일각에서 "중국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이 위기에 놓였다"는 진단까지 나올 정도로 분위기는 험악하다.

급격한 고령화로 내달리는 중국의 사정을 고려할 때, 중국 정부 입장에선 정년 연장은 불가피한 조치다. 19일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는 관련 회의를 주재하면서 "당과 국가 사업 전반에서 내린 중대한 결정"이라며 "중국식 현대화를 돕는 현실적 요구이자 민생을 더 개선할 수 있는 중대한 조치"라고 말했다. 이어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의 중요 사항을 철저히 연구하고 관철하며 개혁을 착실히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19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점진적 정년연장 사업 실시를 위한 회의를 열었다. 사진 중국 국무원 홈페이지 캡처

앞서 중국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 13일 폐막한 제11차 회의에서 정년 연장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중국 근로자의 법정 퇴직 연령은 점진적으로 연장된다. 남성은 기존 60세에서 63세로, 여성은 기존 50~55세에서 55~58세로 늘어난다. 지난 70여년 동안 법정 퇴직 연령을 유지해온 만큼 이번 조치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중국 연금 당국은 결혼과 출산 기피, 고령화의 가속을 심각하게 바라본다. 결국 정년 연장을 통해 생산력을 확보하고 연금 고갈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판단이다. 당국은 이 같은 정년 연장 시 "앞으로 10년 동안 적자를 20% 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2022년 11월 10일 중국 베이징의 한 공원에서 노인들이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제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정년 연장 정책에 대한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징 소재 금융권 회사에 다니는 한 30대 직장인은 “은퇴 시기가 늦어지면 그만큼 일을 더 많이 하라는 뜻”이라며 “이미 건강과 젊음을 볼모로 과중한 업무를 떠맡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20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다른 국가처럼 연금 개혁이 촉발한 시위는 보이지 않지만 전면적 영향에 직면할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가장 좌절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청년실업률이 20%를 넘을 정도로 고공 행진하는 상황에서 "은퇴가 미뤄진 장년층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세대 갈등론도 퍼지고 있다. 정년 연장을 주제로 토론의 장이 펼쳐진 소셜미디어(SNS) 게시물에서 한 이용자는 "노인들이 퇴직하지 않으면 어떻게 신입사원을 채용하겠느냐"고 댓글을 올렸다. 또 다른 이용자는 "은퇴 후 낮에는 마작을, 밤에는 춤판을 벌이는 우리 동네 노인들이 부럽다"고 썼다.

자동차 제조업체를 다녔던 한 20대 남성은 SCMP에 "공무원인 나의 아버지는 달마다 내가 엄청난 노력 끝에 벌어들인 임금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수령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실업자가 됐다.

지난해 4월 중국 서부 대도시 충칭에서 열린 잡페어에 몰린 인파. AFP=연합뉴스

그렇다고 장년층이 정년 연장을 반기는 것도 아니다. 더 오래 일하면서 이전 세대보다 더 적은 연금을 받을 것이란 불만 때문이다.

한 50대 공무원은 신문에 "(정년 연장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아무도 기뻐할 수 없다"고 말했고, 상하이의 또 다른 공무원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전 세대보다 더 적은 연금을 받는 건 불공평하다"고 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SCMP는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고 짚었다.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남성이 전기 자전거에 아이를 태워 하교 시키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년 연장이 시진핑 지도부에 큰 부담을 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의 알프레드 우 부교수는 "취업 기회가 많고 경제가 상승하던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시기가 정년 연장의 마지막 '골든 타임'이었다"며 "통치 기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리고 신문에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출산 탓에 채택된 정년 연장안이 저출산을 더 부추길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도시 육아의 80% 정도가 조부모에 의존 중인 중국 특성상 정년 연장이 출생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은퇴 연령을 높이면 돌봄 위기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이도성 특파원 lee.dos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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