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0클럽' 오타니, 내년엔 '이도류'로 돌아갈까

[MLB] 괴물 타자 가치 증명했지만... 포기하기엔 아까운 투구 능력

[양형석 기자]

▲ 오타니 쇼헤이(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1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2024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경기에 1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50홈런-50도루 기록을 작성했다. ⓒ Getty Images via AFP=연합뉴스

한 시즌에 40개의 홈런을 때리는 타자는 어느 리그를 가도 '거포'로 불린다. 한 시즌에 40개의 도루를 기록하는 주자 역시 어느 리그에서든 '준족'으로 인정 받는다. 그리고 가끔은 그 어려운 40홈런과 40도루를 한 시즌에 달성하는 선수들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40홈런-40도루를 한 시즌에 달성한 타자는 단순히 '호타준족'이라는 표현으로도 불리기도 부족해 '통칭 천재타자'라고 불리곤 한다.

100년이 훌쩍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지난해까지 40-40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단 5명에 불과했다. 1988년의 호세 칸세코를 시작으로 1996년의 배리 본즈, 1998년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2006년의 알폰소 소리아노, 지난해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가 그 주인공이다. KBO리그에서는 지난 2015년 NC 다이노스에서 활약했던 에릭 테임즈가 47홈런40도루를 기록하며 유일한 40-40클럽 가입선수로 남아있다.

그리고 20일(이하 한국시각) 40-40을 넘어 역대 최초로 50홈런-50도루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선수가 탄생했다. 바로 LA다저스에서 활약하는 일본인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그 주인공이다. 오타니는 20일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 3홈런2도루를 폭발하면서 전인미답의 50-50클럽에 가입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타자로서 엄청난 대기록을 세운 오타니가 투수로도 활약하는 '투타겸업' 선수라는 점이다.

거액 대신 조기 빅리그 진출 선택

오타니는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즈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일찌감치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선수로 주목 받았다. 시속 160km를 넘나드는 빠른 공과 함께 주무기인 스플리터 조합은 오타니의 시그니처 구종이다. 한국 대표팀 역시 지난 2015년 프리미어12에서 오타니를 두 차례 상대했는데 당시 한국은 오타니를 상대로 2경기에서 13이닝 동안 3안타21삼진 무득점으로 철저하게 막힌 바 있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로부터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그가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이도류' 선수여서다. 투수로서 통산 5년 동안 42승15패 평균자책점2.52의 성적을 기록한 오타니는 타자로서도 403경기에 출전해 타율 .286 48홈런166타점13도루 OPS(출루율+장타율) .858을 기록했다(일본에서는 투수로서 더욱 주목 받았기 때문에 부상 방지를 위해 도루 시도를 많이 하지 않았다).

2017 시즌이 끝나고 해외 진출 자격을 얻은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뜨거운 구애를 받았다. 사실 일본에서 2년만 더 뛰고 포스팅을 신청했다면 훨씬 더 좋은 조건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지만 오타니는 많은 돈이 아닌 빅리그 조기 진출을 원했다. 결국 오타니는 자신의 가치보다 한참 적은 돈과 6년의 서비스 타임(FA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감수하고 LA 에인절스에 입단했다.

확실한 에이스 투수가 없었던 에인절스는 '투수 오타니'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오타니는 루키 시즌 팔꿈치 부상으로 10경기에 등판해 4승2패3.31의 성적에 그쳤다. 대신 타자로서 104경기에 출전해 타율 .285 22홈런61타점59득점10도루OPS .925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면서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에 선정됐다. 메이저리거로서 오타니의 눈부신 커리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2018 시즌이 끝나고 팔꿈치 수술을 받은 오타니는 2019년 타격에만 전념했음에도 18홈런62타점에 그쳤다. 오타니는 코로나19로 인해 단축 시즌으로 치러진 2020년에도 타율 .190 7홈런24타점, 투수로서는 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7.80(1.2이닝7실점)으로 크게 부진했다. 일부 야구팬들은 실망스런 2년을 보낸 오타니의 '거품설'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2년의 움츠림은 2021년부터의 대폭발을 위한 준비였다.

다저스 첫해, 전인미답의 '50-50클럽' 가입

▲ 20일(현지시간) 도쿄의 한 행인이 오타니 쇼헤이(로스엔젤레스 다저스)의 50홈런-50도루 소식을 다룬 호외를 읽고 있다. ⓒ AP=연합뉴스

오타니는 2021년 타자로 155경기에 출전해 46홈런100타점103득점26도루, 투수로 9승2패3.18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아메리칸리그 MVP에 선정됐다. 2022년에는 35홈런95타점과 함께 마운드에서 15승9패2.33 219탈삼진으로 MVP투표 2위와 사이영상 투표 4위를 기록하며 이도류의 진수를 보여줬다. 오타니는 작년에도 10승과 함께 44홈런95타점으로 빅리그 진출 후 두 번째 MVP를 수상했다.

에인절스에서 6년을 보낸 오타니는 빅리그 진출 후 첫 FA자격을 얻었고 포스팅 자격을 얻었을 때만큼 많은 구단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대 규모인 5억 달러를 넘길 거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빅리그 최고의 인기 구단 중 하나인 다저스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으로 오타니를 붙잡았다. 무려 10년 7억 달러라는 세계 프로 스포츠 사상 최고액을 오타니에게 안겨준 것이다.

그리고 오타니는 올 시즌 활약을 통해 자신이 왜 '7억 달러의 사나이'가 됐는지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수술을 받으면서 올해 타자에만 전념한 오타니는 다저스의 지명타자로 활약하면서 150경기에서 타율 .294 51홈런120타점123득점51도루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50-50 클럽에 가입했다. 내셔널리그 홈런왕과 타점왕, 득점왕이 매우 유력한 오타니는 내셔널리그 MVP 역시 사실상 예약했다.

문제(?)는 수술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한 오타니의 팔이 내년이면 건강해질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올 시즌을 통해 '타자 오타니'의 위력을 충분히 보여준 만큼 적지 않은 야구팬들은 오타니가 앞으로 타자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2022년 승률 .451의 약체 에인절스에서 15승과 함께 2.3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투수 오타니'의 재능 역시 포기하기 아까운 것은 마찬가지다.

다저스는 올해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타일러 글래스나우와 야마모토 요시노부,클레이튼 커쇼, 워커 뷸러 등 주축 투수들의 부상 때문에 고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이스급 투구를 기대할 수 있는 '투수 오타니'는 다저스가 포기하기 아까운 카드다. 과연 다저스는 내년 시즌 50홈런50도루가 가능한 '풀타임 괴물타자 오타니' 대신 투타를 겸업하는 '이도류 오타니' 카드를 꺼내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