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에 스펙 11개? 바벨탑 쌓는 취준생들 [고스펙 사회①]
문채연 2024. 9. 20. 14:43
-85만원 내면 스펙 11개, 취업 사교육 등장
-취준생 평균 스펙…자격증은 3개 이상, 토익 점수 900점 이상
-커뮤니티 이용자 대부분 본인 스펙 기준 미달이라 생각해
스펙=고고익선. 스펙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으로, 최근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10여년 전부터 사회 문제로 떠올랐던 취업 준비생들의 고스펙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청년들의 마음을 파고든 취업 사교육, ‘스펙 쌓기 프로그램’까지 생겨났다. 정부는 청년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실시하는 등 정책에 변화를 주고 있지만, 청년 고용률은 내리막을 걷고 있다. 청년들이 스펙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고, 청년 취업 정책의 실효성을 점검한다. [편집자주]
“100일 만에 스펙 11개 쌓고 취업하자!”
지난해 겨울, 취업 전선에 뛰어든 A씨는 SNS 광고를 통해 ‘스펙 쌓기 프로그램’을 봤다. 광고에는 빠르면 3개월, 늦어도 4개월 안에 서류 합격을 위한 스펙을 만들어준다고 적혀있었다. 프로그램 홍보 게시물에 따르면 참가자 모두 공모전 우수상과 직무 관련 자격증을 받을 수 있고, 실제 대기업 현직자와 직접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수 있다.
A씨는 유명한 대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력이 추가되면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 지원을 결심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85만원의 참가비용을 내야 했다. 이뿐만 아니다. 스펙 쌓기 프로그램이 제공을 약속한 특정 자격증을 받으려면 돈을 추가로 내야 했다. 추가 금액까지 합하면 약 120만원이 필요했다.
A씨는 당시 스펙 쌓기 프로그램 홍보 게시글에 금액 고지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제출을 요구하고 합격해야만 참가할 수 있게 하는 등 스펙 쌓기 프로그램이 서포터즈와 같은 일반적인 대외 활동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금액이 부담됐던 그는 결국 프로그램 참가를 포기했다.
“이렇게 돈 내고 스펙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으니까, 취업 준비생들도 다 같이 스펙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돈 내고 조금 고생하면 몇 달 안에 공모전 상장이나 프로젝트 경험이 뚝딱하고 나오니까, 분별력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죠”
지난 몇 년간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리어 플랫폼에 짧은 기간 내 취준생이 원하는 실무 경력을 포함한 스펙을 쌓아주겠다는 프로그램이 성행하고 있다. ‘실무역량 프로젝트’, ‘실무 강화 프로젝트’ 등 이름과 주최사는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3~4개월 정도 짧은 기간 안에 10여 개의 스펙을 쌓아주겠다고 홍보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특히 현직자와 함께 실무 프로젝트를 하는 등 면접관에게 호소할 수 있는 직무 능력을 만들어주겠다고 홍보한다. 또 홍보 게시글에 따르면,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만 해도 참가자에게는 자격증, 실무 프로젝트 경력, 공모전 수상 경력 등이 생긴다. 그 탓인지 스펙 프로그램 홍보 게시글이 올라오면 실시간 인기 공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스펙 쌓기 프로젝트가 참가자들에게 제공을 약속하는 스펙의 개수는 10개가 넘어간다.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스펙을 얼마나 쌓아야 한다고 생각할까. 취재진이 올해 상반기(1월~6월) 커리어 플랫폼 ‘링커리어’의 커뮤니티 중 서로의 스펙을 평가해 주는 ‘스펙 평가방’에 올라온 게시물 311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스펙평가방에 본인의 스펙을 게시한 이용자들은 대부분 자격증(240명), 언어 성적(225명), 대외 활동(169명), 공모전 수상 경력(129명)을 갖추고 있었다.
이들이 보유한 스펙의 평균값을 산출한 결과, 한 사람당 자격증은 평균 3.03개, 대외 활동은 2.96개, 공모전 수상 경력은 2.86개씩 가지고 있었다. 평균 학점은 4.5점 만점에 3.79점이었으며,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영어시험 중 하나인 토익 평균 점수는 990점 만점에 905점이었다.
프로젝트 및 직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밝힌 사람은 85명으로, 한 사람당 평균 1.91건 참가했다고 밝혔다.
스펙 평가방 커뮤니티 이용자들 대부분은 본인이 현재 지닌 스펙이 기준 미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턴 경험 2회, 공모전 수상 경험 4회, 해외 유학 10년 이상, 대외 활동 8개 이상, 언어 성적 토익 기준 900점 이상이라고 밝힌 한 이용자는 “자소서가 문제인지 서류 탈락의 연속”이라며 “다른 취준생들에 비해 스펙이 낮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턴 경험 2회, 자격증 3개, 대외 활동 4개, 공모전 수상 경력 6개, 언어 성적 오픽 기준 IM이라고 밝힌 또 다른 이용자는 “어학 점수가 부족한 것 같다”며 다른 이용자들에게 언어 성적을 올릴 방법을 묻기도 했다.
문채연 기자 styleofkyte@gmail.com
정세진 기자 sophie07032000@gmail.com
안지민 기자 ahm1604@naver.com
-취준생 평균 스펙…자격증은 3개 이상, 토익 점수 900점 이상
-커뮤니티 이용자 대부분 본인 스펙 기준 미달이라 생각해
쿠키뉴스는 기성 언론의 책임과 사회 공헌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언론인 활동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예비 언론인들에게 콘텐츠 구현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지난 1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콘텐츠 기획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이 기사는 공모전에서 당선한 기획안을 바탕으로, 대학언론인이 쿠키뉴스의 멘토링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
스펙=고고익선. 스펙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으로, 최근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10여년 전부터 사회 문제로 떠올랐던 취업 준비생들의 고스펙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청년들의 마음을 파고든 취업 사교육, ‘스펙 쌓기 프로그램’까지 생겨났다. 정부는 청년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실시하는 등 정책에 변화를 주고 있지만, 청년 고용률은 내리막을 걷고 있다. 청년들이 스펙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고, 청년 취업 정책의 실효성을 점검한다. [편집자주]
“100일 만에 스펙 11개 쌓고 취업하자!”
지난해 겨울, 취업 전선에 뛰어든 A씨는 SNS 광고를 통해 ‘스펙 쌓기 프로그램’을 봤다. 광고에는 빠르면 3개월, 늦어도 4개월 안에 서류 합격을 위한 스펙을 만들어준다고 적혀있었다. 프로그램 홍보 게시물에 따르면 참가자 모두 공모전 우수상과 직무 관련 자격증을 받을 수 있고, 실제 대기업 현직자와 직접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수 있다.
A씨는 유명한 대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력이 추가되면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 지원을 결심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85만원의 참가비용을 내야 했다. 이뿐만 아니다. 스펙 쌓기 프로그램이 제공을 약속한 특정 자격증을 받으려면 돈을 추가로 내야 했다. 추가 금액까지 합하면 약 120만원이 필요했다.
A씨는 당시 스펙 쌓기 프로그램 홍보 게시글에 금액 고지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제출을 요구하고 합격해야만 참가할 수 있게 하는 등 스펙 쌓기 프로그램이 서포터즈와 같은 일반적인 대외 활동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금액이 부담됐던 그는 결국 프로그램 참가를 포기했다.
“이렇게 돈 내고 스펙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으니까, 취업 준비생들도 다 같이 스펙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돈 내고 조금 고생하면 몇 달 안에 공모전 상장이나 프로젝트 경험이 뚝딱하고 나오니까, 분별력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죠”
지난 몇 년간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리어 플랫폼에 짧은 기간 내 취준생이 원하는 실무 경력을 포함한 스펙을 쌓아주겠다는 프로그램이 성행하고 있다. ‘실무역량 프로젝트’, ‘실무 강화 프로젝트’ 등 이름과 주최사는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3~4개월 정도 짧은 기간 안에 10여 개의 스펙을 쌓아주겠다고 홍보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특히 현직자와 함께 실무 프로젝트를 하는 등 면접관에게 호소할 수 있는 직무 능력을 만들어주겠다고 홍보한다. 또 홍보 게시글에 따르면,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만 해도 참가자에게는 자격증, 실무 프로젝트 경력, 공모전 수상 경력 등이 생긴다. 그 탓인지 스펙 프로그램 홍보 게시글이 올라오면 실시간 인기 공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스펙 쌓기 프로젝트가 참가자들에게 제공을 약속하는 스펙의 개수는 10개가 넘어간다.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스펙을 얼마나 쌓아야 한다고 생각할까. 취재진이 올해 상반기(1월~6월) 커리어 플랫폼 ‘링커리어’의 커뮤니티 중 서로의 스펙을 평가해 주는 ‘스펙 평가방’에 올라온 게시물 311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스펙평가방에 본인의 스펙을 게시한 이용자들은 대부분 자격증(240명), 언어 성적(225명), 대외 활동(169명), 공모전 수상 경력(129명)을 갖추고 있었다.
이들이 보유한 스펙의 평균값을 산출한 결과, 한 사람당 자격증은 평균 3.03개, 대외 활동은 2.96개, 공모전 수상 경력은 2.86개씩 가지고 있었다. 평균 학점은 4.5점 만점에 3.79점이었으며,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영어시험 중 하나인 토익 평균 점수는 990점 만점에 905점이었다.
프로젝트 및 직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밝힌 사람은 85명으로, 한 사람당 평균 1.91건 참가했다고 밝혔다.
스펙 평가방 커뮤니티 이용자들 대부분은 본인이 현재 지닌 스펙이 기준 미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턴 경험 2회, 공모전 수상 경험 4회, 해외 유학 10년 이상, 대외 활동 8개 이상, 언어 성적 토익 기준 900점 이상이라고 밝힌 한 이용자는 “자소서가 문제인지 서류 탈락의 연속”이라며 “다른 취준생들에 비해 스펙이 낮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턴 경험 2회, 자격증 3개, 대외 활동 4개, 공모전 수상 경력 6개, 언어 성적 오픽 기준 IM이라고 밝힌 또 다른 이용자는 “어학 점수가 부족한 것 같다”며 다른 이용자들에게 언어 성적을 올릴 방법을 묻기도 했다.
문채연 기자 styleofkyte@gmail.com
정세진 기자 sophie07032000@gmail.com
안지민 기자 ahm16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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