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뮤즈로 돌아온 김민희, 여전한 것과 달라진 것
[장혜령 기자]
▲ 영화 <수유천> 스틸 |
ⓒ (주)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
이유야 어떻든, 오랜만에 대학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살아 있음을 느낀다. 교정의 가을 분위기, 청춘으로 돌아간 듯한 노스탤지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ㅂ람들이 있어 즐겁다.
한편, 촌극제는 총 7명이 있었으나 연출자(하성국)가 세 여성과 스캔들을 내며 사라지는 바람에 엎어질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시언이 연출을 맡아 열흘 동안 남은 네 명과 맹연습에 돌입하고 있다. 그러던 중 외삼촌은 전임을 예뻐한다는 텍스타일과 교수 은열(조윤희)과 가까워지며 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몇 차례 셋이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가 형성되고 전임은 외삼촌과 교수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타들어 가는 전임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달은 차고 기울어져 커져간다.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여유
영화 <수유천>은 홍상수 감독의 32번째 신작으로 제77회 로카르노 국제 경쟁 부분에 공식 초청됐다. 그동안 제작실장으로만 이름을 올렸던 김민희가 주인공 전임을 맡아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여전히 국내 활동은 전무하나 해외에서 값진 결과를 낸 두 사람의 협업이 이번에도 통했다. 특별한 메시지나 주제로 시작하지 않고, 현재 상황과 날씨, 계절, 소수의 스태프로 꾸려진 제작 방식을 고수한다.
▲ 영화 <수유천> 스틸컷 |
ⓒ (주)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
극 중 캐릭터의 입을 빌려 현실을 슬쩍 끌어오는 능청은 홍상수의 작품을 꾸준히 봐왔다면 즐거운 코미디로 다가올 것이다. 작품을 통해서라도 현실의 바람을 이루고 싶은 판타지가 불쑥하고 끼어드는 점도 여전하다. 대중의 조소와 냉소에 작품으로 답하는 듯한 전언과 자기 반영이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전임이 직물 패턴 예술가이자 강사인 점은 의미심장하다. 조카의 작업실을 방문한 외삼촌에게 작업 방식과 방향을 설명하던 전임은 시간 투자만큼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답한다. 삶이 거대하게 직조된 인연과 관계라고 본다면, 필연과 우연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패턴을 형성하고, 연속된 상호 관계와 선택에 따라 다양한 창조물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임은 매일 수유천에 나와 강물을 스케치하며 자연을 모방해 베틀로 패턴 연작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작품, 관계, 촌극 뭐하나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별거 중인 외삼촌과 교수가 가까워질수록 불편함이 가중된다.
그러던 중 마지못해 나간 식사 자리에서 뜻밖에 기쁨을 만난다. 한강-중랑천-수유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물의 생명력과 역동성에서 영감받는다. 끊임없이 흐르고 변하는 자연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던 인생이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음식점 옆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 무언가를 찾은 것처럼 미소 지으며 영화는 끝난다.
김민희만큼의 시그니처라면 권해효를 꼽을 수 있다. 불러주는 곳 없는 퇴물 예술가인 시언을 맡았다. 시언은 극중에서 여전히 존경하고 애정을 마다하지 않는 팬을 만난다. 홍상수의 오랜 페르소나답게 현실과 판타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농익은 연기로 지질하고 궁색한 남성의 표상 그 자체였다.
▲ 영화 <수유천> 스틸컷 |
ⓒ (주)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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