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삶은 이야기와 다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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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주인공이 집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이야기 속 세 사람은 들키고 싶지 않던 비밀을 누군가와 공유하게 된다.
이 책은 화자 중 한 사람인 소리가 반 친구들에게 은연중에 드러낸 자신의 은밀한 비밀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지우는 공사 현장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떠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선호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다 죽어야' 마땅했던 이야기의 결말을 고쳐 쓰고자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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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공유하며 연대하는 세 사람
손과 손, 그림과 그림으로 연결
아픔 속에서도 변화, 성장하는 이야기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주인공이 집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어떠한 사건을 만나 다시 집으로 회귀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야기 속 주인공의 삶처럼 그리 녹록지 않다. 상실을 경험한 후 세상에 혼자 남겨진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책의 화자는 세상에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 누구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야기는 없는지를 묻는다. 적어도 한 사람이라도 남겨두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두근두근 내 인생’, ‘바깥은 여름’ 등을 써낸 베스트셀러 소설가 김애란이 13년 만에 장편을 내놨다. 성장소설을 써왔던 저자는 이번 소설을 통해 비밀과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야기 속 세 사람은 들키고 싶지 않던 비밀을 누군가와 공유하게 된다. 비밀이 드러나면서 중압감과 죄책감을 조금씩 내려놓게 된다. 때로는 비밀을 꽁꽁 숨기면서도, 누군가 조금은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책에서는 제목과 같은 이름의 게임이 중요한 장치로 등장한다. 다섯 개의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되,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을 포함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때의 거짓말은 친구들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낸 단순 허황된 문장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드러내기 어려운 진실을 거짓처럼 보이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장치가 된다. 이 책은 화자 중 한 사람인 소리가 반 친구들에게 은연중에 드러낸 자신의 은밀한 비밀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우와 소리, 채운은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가까워진다. 세 사람의 비밀은, 저마다 가까운 사람을 잃어본 상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이룬다. 채운은 아빠의 폭력으로부터 엄마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찔렀다는 비밀을 품고 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밤 경찰을 따라 나오는 채운과 엄마의 모습을 목격한 지우는 만화 카페에 채운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이를 알게 된 채운이 지우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연결된다.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소리는 채운의 부탁으로 병상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손을 잡게 된다. 엄마를 잃고 건설현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우 역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인 도마뱀 용식이를, 같은 반 친구 소리에게 맡긴다. 세 사람은 서로의 손을 통해, 그림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때로는 도움을 준다. 보이지 않는 연대감이 이들을 조금씩 변화하게 만든다.
현실은 동화 속 이야기와 다르다. 누군가의 삶에서는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기도 한다. 지우 역시 그랬다. 하지만 지우는 공사 현장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떠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선호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다 죽어야’ 마땅했던 이야기의 결말을 고쳐 쓰고자 마음먹는다. "다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결국 그 마음을 내려놓는 것"임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원래의 삶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조금씩 성장하고 희망을 얻는다. 흔한 이야기 속의 영웅처럼 역경과 고난을 거쳐 행복한 삶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라도, 이전보다는 미세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화자는 말한다. "꿈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돌아왔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 김애란 | 문학동네 | 240쪽 | 1만6000원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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