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중독' 고민하는 당신, 이게 답일지도 몰라요
[김성호 기자]
30초 내외의 짧은 영상인 쇼츠(숏츠)가 콘텐츠 시장의 스타로 떠올랐다.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틱톡과 인스타그램(릴스), 중장년부터 노년을 아우르는 페이스북, 검색엔진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성장한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이런 숏폼, 짧은 영상 형식의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워 관객을 제 플랫폼 안에 잡아두려 경쟁한다.
결과는 꽤나 성공적인 모양이다. 30초짜리 쇼츠를 이어보다가 수십 분에서 수 시간까지 까먹기 일쑤란 자조적 고백이 곳곳에서 이어질 정도다.
쇼츠 또한 콘텐츠의 하나일 테다. TV가 수많은 해악에도 불구하고 그저 바보상자로 그치진 않았듯, 쇼츠에도 나름의 긍정적 기능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자극적인 주제로 채워진 짤막한 영상이 거듭해 등장하는 쇼츠 소비 가운데서 인간의 주도적 사고가 실종될 밖에 없다는 우려엔 상당한 근거가 있다.
▲ 짤막한 영상이 거듭해 등장하는 쇼츠 등 숏폼 소비에 대한 우려들이 나온다. (자료사진) |
ⓒ stereophototyp on Unsplash |
쇼츠의 시대, 인간이 잃어버린 대표적 경험 중 하나로 '몰입'을 들 수 있겠다. 긍정심리학의 주창자 중 한 명이자 심리학과 자기계발 부문의 대표적 고전들을 여럿 써낸 작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현대인이 잃어가는 몰입을 되찾아 삶의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온 인물이다.
<몰입의 즐거움>은 앞서 <몰입>이 거둔 세계적 성공 이후 발표한 대표작으로, 인간이 몰입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부터 시작하여 삶을 보다 가치 있게 꾸려갈 수 있는 비결을 모색한다(리커버판, 2021년작).
쇼츠의 시대, 몰입을 말하다
한국에서만도 30만 부가 훌쩍 넘게 팔린 책이 <몰입의 즐거움>이다. 2005년 해냄이 처음 한국에 소개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팔려나가 초판과 개정판을 합쳐 90쇄를 앞두고 있는 명저로 꼽힌다.
무엇이 이 책을 특별하게 하였는가, 처음 쓰인 지 무려 사반세기가 지난 이 책이 시대의 평결에도 살아남아 고전의 반열에 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동력과 기회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바람직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과제가 너무 힘겨우면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에 젖다가 제풀에 포기하고 만다. 과제와 실력의 수준이 둘 다 낮으면 아무리 경험을 해도 미적지근할 뿐이다. 그러나 힘겨운 과제가 수준 높은 실력과 결합하면 일상 생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심도 있는 참여와 몰입이 이루어진다." -46p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몰입(flow)은 무엇인가. 난이도 있는 과제에 온 힘을 다해 열중할 때 맛보게 되는 특수한 경험이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흔한 표현처럼, 제가 하는 일에 완전히 몰두해 일 바깥의 다른 무엇을 잊는 일을 뜻한다. 몰입에 이르면 집중력이 최고조로 발휘되는 가운데 개인의 역량과 즐거움 또한 선명하게 느낄 수가 있다.
▲ 몰입의 즐거움 책 표지 |
ⓒ 해냄 |
"사람들이 직장일을 고역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첫째는 하나마나한 일을 한다는 불만이다.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못하고 사실은 해를 끼칠 가능성이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세일즈맨들, 심지어는 과학자들 중에서도 가량 군수 산업이나 담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을 심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이만저만 마음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는 지겨운 일을 밥 먹듯이 되풀이해야 한다는 데서 느끼는 불만이다. (중략) 셋째는 직장일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이다." -135p
말하자면 제 일이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 일이 별 난이도가 없고 지겹다 여겨질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을 고역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흔히 일로 얻는 보상, 즉 처우가 행복감이며 만족감에 지대한 영향을 주리라고 여기지만 칙센트미하이의 연구결과 그는 과대평가된 사실일 뿐이다.
그는 연구에서 얻은 답변에 비추어 '많은 사람들은 보수가 많고 안정성이 높다면 아무리 지겨운 일을 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도 '그러한 자세는 깨어 있는 시간의 40% 가까이를 차지하는 소중한 시간을 방기하는 태도'라고 선을 긋는다.
떠밀리듯 사는 인생에서 의미 있는 삶으로
그로부터 그는 위 세 가지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삶을 의미 있게 바꾸는 첫걸음이라 주장한다. 자기가 하는 일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난이도 있는 과제를 설정하고 적극 해소해가는 것, 몰입을 삶 가운데 둠으로써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직장에 매인 이가 어떻게 이 같은 과제를 해낼 수 있을까 막막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칙센트미하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말한다.
"자기가 하는 일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진심에서 우러나와 손님을 맞는 슈퍼마켓 직원, 특정한 증세보다는 환자의 전체 건강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의사, 센세이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는 믿음으로 기사를 쓰는 기자, 이런 사람들은 티끌만한 결과밖에는 낳지 못하는 틀에 박힌 일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을 몰고 온다." -137p
반례라면 제가 하는 일이 하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슈퍼마켓 직원, 환자는 팽개치고 돈벌이에만 열을 올리는 의사, 제가 그저 직장인일 뿐이라 여기는 기자 같은 이가 되겠다. 중요한 자리에서 제가 하는 일의 가치를 살피지 않는 직업인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대충 시간만 때우다 퇴근한다는 소위 '월급루팡'의 삶을 자랑처럼 떠벌리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나아갔는가. 직업의식도 사명감도 사라진 이 시대에서 그를 되찾는 것이 도리어 제 삶을 일으키는 것이란 <몰입의 즐거움>의 주장이 적잖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제 능력에 맞는 도전과제를 선택하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며,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세부적 요건이 하나하나 제시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 또한 언급된다. 그리고 그는 별반 새로울 것 없는, 그러나 많은 선현들이 입을 모아 말하였던 결론이다. 사는대로 사는 것이 아닌, 생각하는 대로 살라는 것이다. 제 삶의 선장이 되라는 것이다.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가장 손쉬운 길은 주인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 혹은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하는 일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저 실 가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느끼고 살아간다. 그런 입장에 놓이면 아까운 정력을 탕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진해서 원하는 일을 늘려야 한다. 무엇을 원한다는 사소한 마음의 움직임이 집중력을 높이고 의식을 명료하게 만들며 내면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181p
'원하는 일을 늘리라'는 게 해법이라니.
대단한 명저로 꼽히는 책 치고 다다르는 결론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이란 게 새삼 놀랍다. 돈과 권력, 성공의 외면적 지표를 남과 비교하며 떠밀리듯 사는 삶 대신,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삶으로 나아가라는 건 얼마나 흔하면서도 힘 있는 조언인가.
쇼츠부터 시작해 온갖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다. 그 가운데서 스스로 사고하고 통제하는 힘을 기르라는 이야기 또한, 원론적이지만 값지다.
자진해서 하는 일을 늘리고, 나도 모른 채 정력을 소모하게 하는 일을 줄여야 한다. 그로부터 얻어진 시간과 열정을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데 투입해야 한다. 그 필요를 설득하고, 기본적 방법론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왜 읽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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